예전에 프라하에 갈 때, 공항에서 책을 한 권 샀었다. 책을 사야 하긴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익숙한 작가의 책을 보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 '상실의 시대'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는, 이 책의 1권을 골랐다. 그게 8월이었는데, 12월이 되어서야 3권의 책을 겨우 다 읽었다. 나도 참 게으른 것 같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데.
'공기 번데기'와 관련된 어떤 한 사건이 있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이 사건을 언급하고, 주인공이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이나 '사건'의 해결은 이야기의 결말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어도 사건의 핵심인 '리틀피플'이나 '공기 번데기'에 대해 독자가 알 수 있는 건 제한적일 뿐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다가가지 않고 주위만 뱅글뱅글 도는 느낌.
이 사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치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두 주인공.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공기 번데기'와 '리틀피플'이 언급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아주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그 변화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 마침내 재회하게 되는 그 광경. 이것이야 말로,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이지만, 난 '그 사건'에만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 그림을 놓치고야 말았다. 3권의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작품 속에서 그린 그림이 아닌, 엉뚱한 그림을 보고 있었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도 내가 기대했던 그림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다. 리틀피플은? 선구는? 공기 번데기는, 어떻게?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 솔직한 감상은, '모든 상황을 버린 채, 주인공들만 쏙 빠져나오고 마무리.' 였다. 그리고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약 이것이 작가의 꾀라면, 참 머리 잘 썼다고 생각했다. 어쨌던지 간에, 내가 책을 읽으면서 그렸던 모든 그림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황당한 결말 때문에 모두 다 버려야 했고, 그래서 이 책은 '상실의 시대'만큼이나 내 마음을 강하게 울리진 못했다. '두 주인공이 만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 작가의 의도였고, '그 사건'은 그저 하나의 소품에 불과했으며, 내가 그렸던 그림은 단지 그 소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책을 다 읽고 나서 얼마가 지난 후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아!' 하고 깨달았으니까.
짤막한 감상을 조금 더 적어놓자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작품이다. 특히, 책의 3권부터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급속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2권까지는 두 주인공의 삶에 스며드는 '그 사건'의 전개가 흥미진진했지만, 3권부터는 이야기의 템포가 급속하게 떨어져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고, 이야기를 억지로 늘리는 느낌도 받았다.
또한, '상실의 시대'에서 보여줬었던 세상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 같은 것들도 기대했지만, 이 작품에 그런 것들이 녹아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간절하고 애절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니까.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설의 결말이 배경을 던져 버리기 때문에,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렇게 정리도 가능하다. '당신의 간절함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비현실에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참 슬프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던지 간에,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냥 짧은 생각에는, 간절함 만큼은 간접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애절하고 아련한 순간이 있으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