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퀘테레에서의 두번째 날도 서서히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 중 아직 돌아보지 않은 마지막 마을인 '마나롤라(Manarola)'로 향했다. 원래는 HJ와 함께 가려 했으나, 피곤했는지 잠에 취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갈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귀찮은 생각도 들고, '이걸 꼭 가아햐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다. 그러나 만약 안간다면, 지금 당장은 편하더라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또 다시 이 곳에 여행올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썩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였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 가기 귀찮더라도 막상 가면 좋은 것처럼, 이 때도 그랬다. 숙소를 나서고 2~3분 동안은 그냥 되돌아갈까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금새 귀찮다는 걸 까먹었다. 그리고 마나롤라를 아주 잘 돌아보고 왔다. 안갔으면 후회했을 것이나, 가봤기에 여한이 없는 곳.
자고 있는 HJ를 남겨두고 숙소를 나왔다
원래는 둘이 가기로 했다가 혼자 가려니
왠지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리오마조레 역에 도착했다
간혹 고속열차가 지나갔는데 안전장치 없는 플랫폼을
사정없이 빠르게 지나가더라
마나롤라역에 도착해서 내렸다가
순간, 기차 쓰러지는 줄 알고 소리지를뻔 했다
기차가 말도 안되는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음
혹시 잘못본 게 아닐까 싶어
다른 각도로도 봤는데 기울어진 게 맞았다
어쨌던지간에, 나는 상당히 놀했다는 거
'마나롤라(Manarola)'도 '리오마조레(Riomaggiore)'처럼
기차역에서 마을로 가려면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그 길이가 생각보다 길었다
리오마조레처럼 마나롤라도 중간에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에서 내려다 본 마나롤라의 번화가의 모습
여기서 한국인 남자애 네 명이서 놀러온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국적을 숨긴 채 잠시 그들이 사진찍는 걸 지켜봤는데
뭔가 부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했다
마나롤라를 돌아다닐 때 서너번 마주쳤던 가족
인도나 파키스탄 계열의 사람인 것 같았다
성공한 아버지, 그를 보필하는 어머니
그리고 유약하고 만사가 귀찮아보이던 두 아들
윗 사진의 반대편 모습
정면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 깊숙히 들어가고
네 개의 녹색 쓰레기통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기차역으로 이어진 터널이 나온다
산기슭에 꼬마 아이들을 형상화 한 듯한 조형물이 보였다
밤에는 저 조형물에 불빛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역으로 돌아가는 터널인가에서 사진으로 봤음
마나롤라 번화가를
따라 내려갔다
2분 정도 걸으니까 바로 바닷가가 나오더라
해를 보아하니, 노을이 지기까지는
1시간도 더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마나롤라를 사진으로 담았다
베르나차도 예뻤지만, 마나롤라도 참 예쁜 곳이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집 지을 생각을 했는지
마나롤라 앞바다
쓰레기도 하나도 없고, 너무 깨끗했다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모습
코르닐리아로 가는 트래킹의 시작점이
사진찍기가 매우 좋더라
나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마나롤라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음
사진도 찍고 뽀뽀도 하고, 젠장
우리나라 같았으면 시멘트로 죄다 발라버렸을텐데
바위를 그대로 두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명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랄까?
이 모습을 보고 문득,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것은
그 공간을 되려 망쳐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건물 새로올리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게 가장 좋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도 있으니
마을 안쪽을 구경하려고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가 이 길이 공중에 뜬 다리라는 걸 알고 경악했다
이 길 전체가 길처럼 보이는 다리라는 거다
길 아래에는 바위와 개천이 있고, 그걸 길처럼 덮어놓은 것
그 높이만 해도 15미터는 되어 보였음
마나롤라에 있는 작은 성당
산 로렌조 성당
마나롤라의 산 로렌조 성당에서 바라본 모습
건물 전체가 미어캣처럼 오똑 서서
늦은 오후의 나른한 햇빛을 받고 있었다
'마나롤라(Manarola)'
그리고 포도밭
다른 각도에서 산 로렌조 성당을 담았다
그런데 성당 오른쪽 바닥에 있는 흰 물체는 뭐지?
사람들도 웃으며 지나가길래 가까이 다가갔더니
고양이가 이러고 자고 있었다
미동도 없어서 처음에는 죽은 줄 알고 식겁했는데
자세히 보니 숨을 쉬고 있길래
'아, 이 미친새끼' 하고 웃으며 돌아섰다
마나롤라의 집들은 이렇게 돌 위에 지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돌과 돌 사이에 다리처럼 길을 놓았더라
길의 높이는 바닷가 쪽으로 갈수록 많이 높아지는 듯
성당 앞에 있던 종탑
시계도 달려 있었는데, 억지로 달아놓은 듯
그 모양과 위치가 쌩뚱맞았다
친퀘테레 지역은 질 좋은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와인을 보관하던 통과 포도즙을 짜내는 압착기가
길 한가운데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쪽은 더이상 볼만한 게 없어서
다시 바닷가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까 본 시계탑과 아기자기한 건물들
골목을 따라 내려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런 시골에 살아도
색채감각이 탁월한 모양이다
세가지 색 조합이 너무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단지 어느 집의 벽일 뿐인데
아까 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영국에서 수학여행을 이쪽으로 온 건지
20명쯤 되는 영국 엑센트를 쓰는 학생들이
분주히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또 봐도 참 멋진 모습
베르나차와 함께 친퀘테레의 얼굴 마담인 듯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인위적으로 개발하지 않은 그대로의 바다
심지어 방파제까지 꼬물꼬물 예전에 만들어놓은 그대로
이 구석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혼자 와서 이런 걸보니, 참 씁쓸하더이다
이 곳에 상당히 오래 있었다
어림잡아 20-3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풍경으로 사진을 상당히 많이 찍었는데
정리하면서 보니 부질없는 짓이었음
해가 곧 저 산 뒤로 넘어갈 것이다
다행히도 날씨가 맑아, 예쁜 노을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떠나기 아쉬운 빛자락이 하늘에 펄럭이듯
HJ와 이 노을을 함께 보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혼자보게 되었다. 몇 번 꼬셔봤지만, 싫다는데 더 권하는 것도 스트레스라 적당히 조르다가 포기했다. 마나롤라는 베르나차만큼이나 작은 마을이었고, 천천히 걸어서 둘러봐도 한순간이었다. 바다를 봤다가 마을을 둘러봤다가 다시 바다를 봤다. 여정의 마지막에는 바다를 보면서 수십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인원만 남아 있었다.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되어 더 좋았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에서 봤던 노을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멋진 노을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멋진 노을이었다.
'친퀘테레(Cinque Terre)'에서의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첫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Riomaggiore)'를 시작으로,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순서로 다섯 마을을 모두 다 돌았다.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느낌이 많이 나질 않아서 좋았다.
한편 여기서는 여유롭게 보내는 게 이 곳의 공간적 특성과도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박 3일 이상의 스케줄로 이곳에 머무르는 게 가장 좋다. 우리는 2박 3일을 머물러서, 여유롭게 5개 마을을 다 돌아봤으며, 트래킹도 경험했다. 여행 카페에서 살펴보니, 피렌체에서 피사를 들러 당일치기로 오는 일정이 많이 보이던데, 그렇게 오면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안오는 게 낫다.
여유로웠던 친퀘테레를 뒤로 하고, 내일은 피렌체로 떠난다. 여행이 벌써 막바지에 가까워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