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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 아르헨티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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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들고서는 너무 얇아서 조금 의아했는데, 책 읽는 습관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나에게는 되려 읽기에 좋았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두께였으니깐.


삶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소멸하게 되면, 그 존재가 엮여있던 삶은 어떻게든 바뀌기 마련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의 삶이 크게 바뀐 것처럼 말이다. 아빠가 아르헨티나 빌딩으로 들어가서는 여태까지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계기는 엄마의 죽음이다. 그리고 '유리'의 죽음 또한, 아빠의 삶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놓는다. 그냥 느낌에는 '유리'가 죽고 나서야, 아빠는 비로소 미쓰코가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얻었던 선물을 얻는 것 같았다. 


미쓰코와 달리, 아빠는 엄마의 죽음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건, 인간이 영원토록 지니는 허망한 바람이라는 걸, 아빠는 유리의 죽음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늦게 나마 아르헨티나 빌딩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유리를 그녀의 고국에 묻으려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죽음이 슬프기는 해도, 사람을 성숙시킬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책에서 '유리'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빠의 피난처이자, 삶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 스승이기도 하다.


책 속의 아르헨티나 빌딩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참 묘한 곳이다. 유리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심지어 먼지까지도 켜켜이 쌓여 있여서 지난 시간이 현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시공간이 일그러진 곳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빌딩은 현실에서 더 이상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아빠가 마음을 의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쓰코가 고다쓰에 앉아 차와 쌀과자를 먹다가 졸면서 꿈 속에서 봤던 지난 날의 풍경. 어느 날은 아빠가 보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아직까지 나는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일이 없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슬픈지 마음 속으로 뼈져리게 느끼진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당장은 심연처럼 깊게 슬퍼도, 시간이 지나 마음을 추스릴 수 있게 되면, 그 소멸이 계기가 되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아빠는 더 이상 비석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어떤 것을 조각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미쓰코가 첫 장에서 이야기하던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매일있던 신선한 발견'이 아닐까 싶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양장)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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