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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여행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의 자다르(Zadar) / 201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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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 바닷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부터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쏴아아 소리를 내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처에 카페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싶었건만. 아무런 건물이 없어, 일단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가 조금 전 내가 지나온 길에 지붕이 있던 걸 생각해내고 그리로 달려갔다.


비는 한 시간 반 정도 내렸다. 숙소(Drunken Monkey Hostel)에 돌아갈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걸어서 25분이 넘는 거리를 비를 맞으며 가기는 싫었다. 아마 집에 가는 거라면, 맞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크로아티아고, 집이 아니라 호스텔이었으니까.


비가 그치길 바라는 마음이 하늘에 통했는지, 점점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이윽고 비를 맞으면서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비가 다시 쏟아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자고 마음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바다 오르간이나 슬쩍 둘러나보고 갈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자다르의 끝에 있는 포구(Istarska Obala)옆에 있던 유명한 조형물

'해에게 건네는 인사(The Greeting To The Sun)'

흐린 날씨였지만, 나름태양열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날씨가 흐리니 바닷물의 색깔도 거무딩딩해져서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거센 바람에 파도도 높아져서 너울이 높게 일었다



그리고 드디어 바다 오르간(Sea Organ / Morske Orgulje)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다의 너울에 따라 오르간이 연주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연주라고 해서,음악이 연주되는 건 아니고 그냥 소리가 나는 정도. 그러나 신기했다

소리는 고래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비가 잦아들자 관광객들이 하나 둘 씩 바다 오르간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에 파도가 높으니 소리가 크게 잘 들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담은 자다르 끝 포구 (Istarska Obala)의 풍경

바다 오르간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센스 있게 정원턱을 건반 모양으로 장식해 놓았다



어떤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꽃 한 송이에 두 가지 색이 섞인 게 신기해서 다가갔다

멀리서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는 꽃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작은 꽃이 모인 것

되게 조그마하고 앙증맞게 예뻐서 한 컷 담았다



그리고 자다르 앞바다를 지나가던 배, '야드로니야(Jadroniya)'와 저 멀리 맑은 하늘

북쪽 하늘은 먹구름 하나 없이 청명하기만 한데

왜 여기에만 먹구름이 잔뜩 껴서 비를 뿌리는 것인가



바다 오르간을 떠나 호스텔로 되돌아 가는 길이었다

흐린 날씨에 비가 언제 다시 들이칠지 몰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응? 이건 뭐지? 먹구름이 물러가며, 하늘이 갠다



헐.. 한 시간 도 채 안되어 먹구름이 완전히 물러가고 완전 쨍쨍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난, 썬글라스를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여기서는 햇살이 너무 강해 자동적으로 쓰게 되더라



남쪽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있어, 우중충한 색깔의 하늘인데



북쪽 하늘은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샤방했다

동남아에서 스콜이 내리는 듯한 이 날씨가 오묘했다



그리고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다시 보게 된, 성 도나트 교회(Church of St. Donatus)

옛 로마시대 경기장이 부서진 석재를 가지고 9세기 경에 지었다고 한다

건물이 울퉁불퉁한 이유는 바로 그것!



'포룸(Forum)'에 햇살이 내리쬐니, 풍경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날씨가 미치는 영향을 새삼스레 다시 느꼈다

나무도 석재도 일렬로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이 이제야 보였다



같은 자리에서 성 매리 교회(St. Mary's Church)를 사진에 담고



바로 뒤를 돌아 한 컷을 더 담았다

성 도나트 교회와 아나스타샤 대성당 뒷편(옅은 갈색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밥 먹을 곳을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오밀조밀하고 예쁜 골목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문득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레스토랑에 들렀다

'부르스케타(Bruschetta)'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 호스텔에서 맛집이라며 추천해 준 곳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터라, 한가한 시간에 맞춰서 갔다



애피타이저로 팩치즈(Pac Cheese)를 시켰는데, 저리 많이 나올 줄 몰랐다

총 8조각이었고 생각보다 두꺼워서 양도 제법 되었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메인 음식인 새우 파스타

새우 소스가 일품이었는데, 나는 되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콜라도 한 병 시켜 먹었다



여기에 나이가 지긋하신 웨이터가 있는데, 이 분이 특히 친절했다. 내가 치즈를 다 먹을 때까지 계속 관심을 가지시다가 다 먹을 때쯤 되자, 파스타를 가져오셨다. 여기 음식은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치즈도 괜찮았고, 함께 있는 올리브는 신선했으며, 견과류도 눅눅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인 음식이었던 새우 파스타는 맛있었다. 특히, 나중에 면을 다 건져먹고 소스가 남게 되자 둥실둥실 떠 있는 기름이 보였는데, 매우 맑고 움직임이 부드러워 좋은 기름을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는 고급 레스토랑이라 가격대가 좀 센편이었다.


* 크로아티아에서 레스토랑 이용 시 참고 / 팁 / 에티켓 / 예절 *

이 나라의 서빙(Serving)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앉은 자리에 상관없이 지나가는 서빙하는 직원을 부르면 되지만, 이 나라에서는 전체 테이블을 구역 별로 나누어 웨이터들이 전담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 구역은 손님들이 알아볼 수 있게 표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테이블에 앉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테이블은 어떤 웨이터가 전담으로 관리하는 구역이다. 그리고 그 웨이터의 이름을 A라고 하자. 그런데 그는 다른 테이블에 서빙 중이라 바쁜 상황이라고 하고.


만약 우리나라라면 다른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다주겠지만, 여긴 다르다. 누구 하나 나에게 메뉴판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당황하거나 어이없을 수도 있다. 혹은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진상이 되니까 그러지는 말자.


조금만 여유롭게 기다리면 내 테이블을 관리하는 웨이터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만약, B라는 직원이 멀뚱멀뚱 놀고 있는 모습이 보여,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그를 부르면 어떻게 될까? 보통 그는 내게 서빙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빙용 표정이 아니라, 무뚝뚝한 표정(경우에 따라 불쾌할 정도로 무표정일 경우도 있으나, 본인 서빙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무표정 할 뿐이다)으로 A를 기다리라고 말할 것이다.



밥을 먹고 부른 배에 포만감을 느끼며

따스한 햇살과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로 다시 바닷가를 걸었다

자다르는 작아서, 걷다보니 또 바다 오르간에 와 있었다



우리나라의 포구는 온갖 그물과 스티로폼과 쓰레기가 득실한데 반해

이 곳의 바다는 포구임에도 놀랍도록 깨끗해서, 저런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건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모텔과 횟집 등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빛내며 들어섰겠지



바다 오르간을 들렀다가 성 아나스타샤 성당 앞으로 갔는데

결혼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이 나와 떠들썩하게 축하해주고 있었다



성당의 바로 앞에서 피로연을 하고

두 명의 악사가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앞에 있는 모델 같은 언니도 결혼식 하객 중 한 명



그리고는 또 한 바퀴를 돌아 바다 오르간으로 돌아왔다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걸터앉아 석양을 보기로 했다






해가 지면서 이 곳의 진가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본 석양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었다

단언컨데, 관광지를 모두 포기하고 석양만 보러와도 충분히 가치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저 석양을 본다는 건

너무나 로맨틱하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행하는 배낭여행객



혹은, 친구들과 서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살아가는데 큰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저 석양 하나로 인해, 이 곳의 공기 밀도가 매우 농밀해져

내가 지금 서있는 시공간이 매우 특별해진 것 같았다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나 자신과 함께





사진으로 담은 석양은 아무리 잘 담아도 원래의 느낌의 1/100도 표현하지 못한다

단지 그 순간의 이런 풍경이었음을 기록해 놓을 뿐..

순간적으로 매우 특별한 공간이었던 이 곳이, 서서히 일상으로 전환되려 하고 있었다

문득, 내 몸이 매우 잘게 파편화 되어, 저 석양 속으로 스며들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 오르간의 '도시공공공간(Urban Public Space)'부문의 수상을 기념하는 돌

크로아티아어로 바다 오르간이 'Morske Orgulje' 인데 ,2006년에 상을 탄 모양이다



자다르의 문양인 말 탄 십자군 기사를 귀엽게 잘 변형시킨

바다 오르간의 머릿돌

2005년에 바다 오르간이 생겼는가 보다



해가 완전히 져서 하늘에는 땅거미만 남았다

구름도 어찌나 예쁘던지



해가 지고나니 관광객들은 'Greeting to the Sun'으로 모여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주위에 원을 그리고 서 있다가

어린 아이들이 뛰어 들어가서 놀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모두들 자연스레 원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원 안으로 들어가서, 나중에는 이런 그림이 되었다



'Greeting to the Sun'을 가까이서 담았다

검은 네모는 태양전지판으로 낮에 햇빛을 흡수해 전기를 생산하고

해가 지면, 흰 부분과 태양 전지의 사이사이에 있는 색깔 LED를 빛낸다



'해에게 건네는 인사(The Greeting to the Sun / Pozdrav Suncu)'는 자다르의 바다 오르간과 바로 붙어 있는 건축물이다. 낮에 멀리서 보면 돌로 된 바닥에 있는 큰 원으로 보이는데, 그 크기가 22M에 달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흰 사각판넬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그 사각형 안에는 검은색 태양 전지판이 있다. 그리고 그 전지판들은 가는 선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낮에는 이 태양전지로 태양열 발전을 해서 전기를 저장해놓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흰 사각형 판넬 뒤에 숨어 있던 LED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LED가 반짝이는 걸로 보이지만,사실은 LED로 그린 그림(심볼, 문양 등)이 바뀌는 것이다. 한편, 낮에 생산한 그 전기는 바닷가에 있는 가로등의 불을 밝히는데도 쓰인다고 한다.


이 구조물은 바다 오르간을 떼어놓고서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바다 오르간이 소리로 자연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컨셉인데, 이와 동일하게 이 구조물은 빛으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축가는 크로아티아의 건축가 '니콜라 바쉬크(Nikola Bašić)' 이다.



이 조명들도 '해에게 건네는 인사(The Greeting to the Sun / Pozdrav Suncu)'가 만든 전기로 켜는 것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니 슬슬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이다



깜깜한 바다에 부서지는 달빛이 너무나 예뻐 사진으로 담고자 했는데

아무리 찍어도 원래 보던 느낌의 1/10,000도 안나오더라



크로아티아 여행을 계획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다르(Zadar)'는 그냥 지나친다. 이곳의 특성은 해안도시라는 점인데, 해안도시라면 가까운 곳에 더 크고 유명한 도시인 '스플리트(Split)'가 있다. 그래서 자다르에 갈 바엔 스플리트를 택하고, 자다르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게다가 스플리트에서는 '흐바르(Hvar)' 섬도 들어갈 수 있으니, 당연히 스플리트를 선택할 수 밖에.


확실히 자다르는 작다. 올드타운(Stari Grad)은 정말 천천히 둘러봐도 서너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관광지도 그 수가 많지 않다. '볼 게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곳의 석양을 접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봐온 그 어떤 석양보다 아름다웠고, 황홀했으며, 환상적이었다. 오죽 했으면, 해가 지는 그 몇 분 동안은 이 세상이 일상의 세상과 분리된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공기는 더 밀도가 높고, 시간은 더 느리게 가는 듯한 그런 느낌의.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매우 로맨틱했던 그 분위기는 내가 혼자 여행한다는 사실을 아쉽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하루 밖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애틋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다르에는 성 도나트 교회를 비롯한 역사가 깊은 여러 관광지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규모나 아름다움이 다른 도시보다 더 낫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다르를 그냥 지나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자다르의 모든 관광지를 포기하고, '석양'과 '바다 오르간(Sea Organ / Morske Orgulje)'과 '해에게 건네는 인사'만 봐도 충분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석양을 조용하게 감상할 수만 있다면, 스플리트보다 여기가 훨씬 더 낫다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다음 여행지인 스플리트(Split)보다 자다르(Zadar)가 100만배 더 좋았다.


단언컨데, 자다르는(Zadar)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