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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여행 - 황제가 사랑했던 스플리트(Split) 2부 / 20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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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Split)는 자다르(Zadar)보다 큰 도시이다. 그러나 두 도시 모두 여행을 해보니, 스플리트가 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도시 자체는 스플리트가 크지만,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곳은 디오클레티안 궁전 정도. 반면에 자다르는 올드타운 전체가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객인 내가 느끼는 두 도시의 체감 크기는 비슷했다.


스플리트에서 볼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기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걷다보니 갔던 곳이 또 나왔지만 뭐 어떠랴. 다시 걷고, 다시 보고, 다시 카메라에 담았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동문인 '은의 문(Silver Gate)'

남아 있는 상태가 썩 좋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아있는 그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오랜 세월을



사진 속 중앙의 각진 건물이 '성 도미니우스 성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

그 옆의 종탑은 그 당시엔 없었고 15~16세기 경에 추가된 것이다




은의 문(Silver Gate)을 지나 밖에서 안을 바라봤다

사진처럼 의류와 악세서리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 유구한 시간의 한 가운데를 지났건만, 이상하게도 딱히 감흥은 없었다



저 흰 나무처럼 보이는 건, 행사 때 쓰는 천막 같은 거 같다

접어놓은 모양이 마치 나무 같고, 흰 색깔이 벽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그래서 살짝 담았다



그냥 발길 닫는 대로 걷다보니, 이런 좁은 골목도 걸을 수 있었다



북문(Gold Gate) 바깥에 있는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그러나 나는 못만지고 왔다



'그레고리우스 닌(Gregory of Nin / Grgur Ninsk)'은 크로아티아의 주교이다. 한국어 이름만 보면 '그레고리우스'가 이름이고, 성씨가 '닌'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닌'은 달마치아 지방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현재는 작은 마을로 남아 있지만, 중세 크로아티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서기 900년대 말까지 크로아티아는 달마치아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가 난립해있었다. 일부는 국가였고, 일부는 부족이었고, 또 일부는 도시들이었다. 진시황이 중국 전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것처럼, 크로아티아도 누군가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어 국가형태를 이루게 되는데, 그게 서기 1,000년 전후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 업적을 이룬 이는 크로아티아의 1대 국왕인 토미슬라브 왕이다. (자그레브 기차역 앞에 그의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있다)


중세 크로아티아 역사에서 '닌(Nin)'이 중요한 이유는 토미슬라브 왕의 근거지가 바로 '닌(Nin)'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청에서도 주교를 보내어 관리를 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전략적인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는 바로 이 곳의 주교였다.


그레고리우스 닌의 가장 큰 업적은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인 크로아티아 어로 미사를 집행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의 모든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교인의 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국어로 미사를 집행하면, 교인의 수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로 교황청을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국어로 미사를 집전하게 된 결과, 그가 크로아티아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그때 막 통일 국가가 된 크로아티아는 종교를 매개로 내부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전까지의 독립 국가의 소속이 아닌,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는 후에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국가와 문화를 유지해 나간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당시에 막 생긴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현재까지 존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토미슬라브 왕도 언어의 중요성을 알았는지, 그 당시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를 매우 비호했다고 한다.



현재 북문은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복원되지 않은 쪽은 돌이 거칠고, 전쟁으로 인한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겠지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주변에는 이렇게 노점이 있었는데

골동품을 파는 벼룩시장과 같은 곳이었다

순간, 황학동의 벼룩시장 생각이 났다



걷다보니, 다시 '페리스타일(Peristyle / 열주광장)'으로 돌아왔다

중앙에 단체 관광객이 있어서 매우 복작거렸다

잠시 쉬었다가 가보지 못한 골목을 찾아 돌아다녔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서문인 철의 문

동문보다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만, 문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듯이 보였다

주거지들과 엉켜서 관심을 주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였다



좁고 매력적인 골목들



여긴 '나로드니 광장(Trg. Narodni)'인데, 파라솔 때문에 딱히 광장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 멀리 시계탑도 있었는데, 주변 건물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 '나로드니 광장(Trg. Narodni / People's Square)'는 하나씩 다 있는 듯



부럽다, 커플!




동상도 혼자, 저 친구도 혼자, 나도 혼자

동상은 '마르코 마룰릭(Marco Marulic)'이라는 크로아티아의 시인이다

스플리트에서 태어나 스플리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걷다 보니 종탑 입장권에 포함된 '성 세례요한 침례교회(St. John's Baptistery)'에 도착했다

천장의 모양이 제각각이라, 쳐다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건물 중앙의 세례대에도 화려한 문양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원래 이 곳은 주피터 신전이었으나, 중세에 성당(?)으로 개조되어 현재에 이른다



성 셰례요한의 동상

현대 크로아티아 조각가 '이반 메쉬트로비치(Ivan Meštrović)'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도 이 조각가가 만든 것



이 곳은 원래 주피터 신전이었으나, 중세 시대에 침례교회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교회라고 하기에는 매우 작은 곳이다. 그리고 이 건물에도 지하실이 있는데, 지하실은 성 토마스에게 봉헌되었다.


한편, 침례교는 기독교의 한 일파인데, 다른 종파와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세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몸 전체가 물에 잠기는 '침례'만을 세례로 인정하며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건물 중앙에는 마치 석관 두 개를 십자 모양으로 포개놓은 듯한 세례대가 있다. 아마 그 곳에 물을 담고 세례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종교가 없기에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실하진 않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 길을 걸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고 또 어디론가 걷다보니

동문을 다시 통과하게 되었고



'세인트 캐서린 알렉산드리아 교회(Church of St. Catherine of Alexandria)'를 다시 만났다

이 교회는 5~6세기에 세워졌다가 전쟁통에 파괴되어 17세기에 재건되었으나

세계대전 때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을 1940~50년 경에 복구한 것이다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프라뇨투지만 광장(Trg. Franje Tuđmana)'에 있던 옛날 공중전화

번호마저 뜯기고 괜히 애잔해져서 사진으로 담았다



'프라뇨투지만 광장(Trg. Franje Tuđmana)' 바로 옆에는 디귿 모양으로 된 건물이 있고

건물의 가운데에 큰 광장이 있는데, 이를 '민주광장(Trg. Republike / Republic Square)'이라 한다



건물은 현대식이었으나,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그리고 광장을 뛰어가는 어린 여자아이



'프라뇨투지만 광장(Trg. Franje Tuđmana)'에 있는 분수

옛날 사진에는 이 곳에 높은 분수가 있었는데, 철거되고 낮은 분수가 들어섰다




'프라뇨투지만 광장(Trg. Franje Tuđmana)'에서 '마르얀 공원(Marjan)'으로 가는 길에 있는

'성 프란시스 수도원(Samostan sv. Frane / Monastery of St. Francis)'의 모습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었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사진만 담고 나왔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올라 마르얀 언덕(Marjan)으로 향했다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15분 정도 된 듯하다

그 정도 오르면 전망대와 카페가 하나 있다




어느 정도 오르니, 전망대가 있어서 사진을 담았다

스플리트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전망대를 지나 언덕 위로 더 올라가니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13세기 경에 세워진 '성 니콜라스 교회(Church of St. Nicholas)'인데 진짜 작았다



마르얀 언덕에는 성 니콜라스 교회(Church of St. Nicholas) 외에도 15세기 경에 지어진 몇 개의 암자들이 더 있다. 그 모든 곳을 돌기 위해서는 이 교회 뒤쪽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더 오른 후,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이 때의 나는 상당히 지쳐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지도를 보다보니, 이 언덕 위에는 동물원이 있다는 표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찾아봐도 동물원은 없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동물원. 1928년에 개장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중 하나라고 한다. 성 니콜라스 교회 위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의 끝에 이르면 우측에 '루카 보틱 (Luka Botic)' 흉상이 있다. 그리고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 루카 보틱 흉상을 오른편에 두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동물원이다. 그 넓이는 0.65헥타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면 약 6.48평방미터, 1.95평. 동물원이라기보다는 우리(Cage)에 가깝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커플

난 아직은 여행 중에 책을 읽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못하다

책은 다른 곳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이 공간은 떠나면 다시오기가 매우 힘드니까




전망대에서 넋놓고 풍경을 바라봤다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어두운 풍경을 담고 숙소로 복귀했다



마르얀(Marjan) 언덕은 낮에는 괜찮으나 밤에는 조금 위험해보였다. 일부러 밤 사진을 찍으려고 전망대에서 늦게까지 기다렸는데, 완전히 어둠이 내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너무 없었다. 저 정도 사진에서 타협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 중간 중간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동네 양아치들이 모여 있었다. 일부러 뛰어가듯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별 일은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숙박하는 사람들이 죄다 여자 아이들 뿐이었다. 7~8명 정도 되는 20대 초중반의 무리였는데, 조금 난감했다. 자기들끼리 이미 친해져 있는 상황이라, 이방인이 낄 자리는 없어보였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간단하게 여행기를 기록했다. 한 편 그날 여자 아이들 중 한 명의 생일이라 어떤 애가 케이크를 사왔다. 어떤 아이가 내게 케이크를 한 조각 건네줬다. 오래만에 먹는 달달한 음식이었는데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스플리트 게스트 하우스(Split Guest House)'에서 숙박을 하면 새벽에 플리트비체로 이동해서 특정 폭포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 플리트비체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불법행위인 것 같으나, 워낙 넓은 데다가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 물장구만 치고 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 폭포 앞에는 수영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스코가 휴대폰을 꺼내서 보여준 사진 속의 폭포를 알아볼 수 있었다. 플리트비체에서 그 폭포 앞을 걸었었고, 그 폭포를 사진으로 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취사의 흔적이나 버려진 쓰레기를 포함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북쪽으로 가는 일정을 계획한다면 한 번 쯤 해볼만 한 것 같기는 하다.


내일은 크로아티아를 떠나,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로 떠난다. 원래는 크로아티아만을 여행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사라예보(Sarajevo)에 끌려 스플리트에서 사라예보까지 긴 시간을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