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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여행 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해하기 2/3 - 세르비아와 제 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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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여행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배경지식을 정리해 두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고슬라비아(Jugoslavija / Југославија)'라는 나라를 꼭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르비아(Republika Srbija / Република Србиј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세르비아에 대해 정리해봤다. 그리고 세르비아인들로 인해 촉발된 제 1차 세계대전도 함께 정리했다.



1) 세르비아의 전성기, 그리고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세르비아는 약 9세기 경에 국가가 세워졌으며, 14세기 경에는 왼쪽 그림처럼 발칸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할 정도로 융성했다.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랍을 구분짓는 지역이기 때문에, 불가리아와 함께 연합을 결성하여 유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오스만투르크(دَوْلَتِ عَلِیَّهِ عُثمَانِیَّه / Ottman Empire)'와 대립하였다. 그러나 1389년 코소보에서 오스만투르크에게 대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1459년 이후로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하에 있게 된다. 이 당시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나라는 세르비아를 포함해,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등 현재의 발칸반도 전체였으며, 심지어는 헝가리까지 오스만투르크의 세력 하에 있었다.


오스만투르크의 힘이 약화되면서, 유럽에 가까웠던 헝가리 등 일부 국가는 1699년부터 독립하기 시작했지만, 세르비아는 1878년이 되어야 독립할 수 있었다. 독립이 될 때까지 세르비아는 약 60여년 동안 '밀로시 오브레노비치(Miloš Obrenović)'에 의해 자치국 형태로 존속했다.


그러던 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오스만투르크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지원하여 함께 대항했으나 패한다. 원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독립하고자 하였으나, 러시아-오스만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서 싸운 것으로 계기로 세르비아만 1878년에 독립했다. 한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Österreich-Ungarn Monarchie / Osztrák-Magyar Monarchia)'으로 편입되었다.



2)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와의 대치 그리고 민족주의



한편 독립한 세르비아는 당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북쪽으로는 폴란드 및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세력을 넓혀, 러시아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여, 세르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제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헝가리인만이 지배계급이었고, 다른 민족들은 이들의 피지배계급이었다. 피지배계급이었던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의 국가는 그 민족적 뿌리가 슬라브족에 있었는데, 세르비아도 슬라브족으로 그 민족적 뿌리가 같았다.



3) 우리는 남슬라브인


세르비아인들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슬라브인들을 동요시킨다. 그리고 이 작업은 북쪽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국경을 대치하고 있었던 러시아가 지원해주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인들도 슬라브인으로 같은 뿌리였다.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슬라브인들을 동요시킨 이유는, 과거 발칸반도를 호령했던 대세르비아 제국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던 남슬라브족의 나라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을 합병해야 했다. 반면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남슬라브족의 불순한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세르비아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4)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Franz Ferdinand)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의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계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 Гаврило Принцип)'에게 암살을 당한다. 당시 세르비아 정부가 개입했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었지만, 암살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반오스트리아 과격단체 소속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최후 통첩을 보낸다. '사라예보 사건 관계자 재판을 위한 오스트리아 관리의 세르비아 입국조치' 항목만 추후 수용하며, 다른 조건은 무조건 수용한다고 회신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선전보고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5)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전쟁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세르비아를 공격하자, 핀란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대치하고 있던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한다. 당시 독일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었기에, 러시아에게 세르비아 지원 중지를 요청했다. 러시아는 이를 묵살하고, 독일제국은 러시아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한편, 당시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이었다. 러시아에게 선전포고한 독일이 후방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프랑스에게 중립을 요구하나, 프랑스는 거절한다. 그리하여, 독일은 프랑스에게도 선전포고를 하게 되어 발칸반도에서 시작된 전쟁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다. [세르비아+러시아+프랑스] vs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독일제국]의 판국으로.


한편 오스만투르크는 그 당시 3두 정치 체제였다. 전쟁이 시작된 후, 독일과 협정을 맺었으나, 그 직후에 중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3두 중 국방부 장관을 포함하여 2두가 친독파였고,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하드(성전)을 선언하며, 독일군의 지원군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는 오스만투르크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영국과 프랑스도 오스만투르크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6)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독일제국, 오스만투르크는 만신창이가 된다. 우선, 독일제국은 폴란드, 프랑스, 덴마크, 리투아니아, 벨기에 등을 위해 국토의 많은 부분을 내놓게 되고, 아프리카에 있던 해외 식민지도 몽땅 빼앗기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도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 이탈리아에게 영토를 내놓게 되고, 남은 지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독립하게 된다.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에게 일부 영토를 이양하고, 남은 영토는 아르메니아, 히자즈 왕국(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편입), 이라크,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로 분할되어 일부는 독립하거나, 일부는 승전국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