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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여행 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해하기 3/3 - 유고슬라비아

여행은 아는만큼 보인다. 미술도 마찬가지고, 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여행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배경지식을 정리해 두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를 이해해야 한다. 이 아래에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내용 뿐이지만 앞의 글에는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 그리고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정리해 놓았다.



1) 세르비아의 제 1차 세계대전 승리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왕국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세르비아는 숙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독립국이었던 '몬테네그로(Crna Gora /Црна Гора / 츠르나고라)를 합쳐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세운다. 유고슬라비아의 뜻은 '남슬라브인의 땅'이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18년 12월부터, 1941년 4월까지 존속하다가, 제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2) 티토(Tito)의 등장과 유고슬라비아


그러나 당시 소련의 지원으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 / Јосип Броз Тито)가 중심이 되어 1945년에 유고슬라비아를 독일군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리고 왕국이었던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산주의 신헌법을 제정하여 소련의 연방국가가 된다. 국가명은 유고슬라비아를 그대로 사용했다. 위쪽의 그림은 당시 소련의 연방국가를 그린 그림이다. 'Federal People's Rep. of Yugoslavia'라는 이름이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이다. (사진 출처는 '여기')


티토는 소련의 직접 통치를 거부하고 국가원수인 본인이 통치를 하길 바랬으며, 이로 인해 소련과 마찰을 종종 일으키다가 결국 '코민포름(Cominform / 공산당 정보 기구)에서 제외되어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걷게 된다. 유고슬라비아는 6개국의 연합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었지만, 티토는 이를 매우 잘 융화시켜서 경제 발전도 이뤄낸다. 정치적으로 체제는 공산주의지만, 미국/소련 어느 편도 아닌 중립노선을 걷게 된다.



3) 티토의 죽음


유고슬라비아의 국가 원수이자, 가중 중요한 인물인 티토는 1980년에 사망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인종학살, 인종청소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 Слободан Милошевић)가 국가원수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고슬라비아는 결속력이 약해져 각 공화국들이 하나씩 독립하게 된다.



4) 독립의 배경


세르비아인들은 슬라브인이라는 민족적 동질성을 앞세워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의 대세르비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르비아인들이 지배 세력이 되었고, 다른 민족들은 피지배 세력이 되어갔다. 이에 세르비아인들과 다른 민족들 같에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독립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티토의 유고슬라비아가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던 것도 다른 나라의 독립을 부추기는 이유가 되었다. 왜냐하면 냉전 시대가 종식되면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5) 마케도니아의 독립, 유고슬라비아 붕괴의 시작


유고슬라비아의 남부에는 마케도니아(Македонија) 지역이 있었다. 그런데 이웃나라인 루마니아는 호시탐탐 마케도니아 지역을 병합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에 티토는 마케도니아인들이 루마니아로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마케도니아의 역사 교육을 허용하고, 마케도니아의 정체성을 인정해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마케도니아가 독립하게 되는데,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독립한다.



6)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의 독립


마케도니아와는 달리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할 때에는 전쟁이 일어났다. 슬로베니아에서는 '10일 전쟁'이라는 이름의 큰 교전이 없던 10일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슬로베니아가 승리했다. 슬로베니아는 세르비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세르비아인이 많지 않았으며, 이런 이유로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어 그나마 평화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반면에 크로아티아에서는 세르비아계가 창설한 정당이 있을 정도로 세르비아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고, 많은 수의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아 영토에 살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와 달리 크로아티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의 독립에 대한 의견 차가 심했으며, 결국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라는 이름의 전쟁이 4년 8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크로아티아 전역이 전쟁터였으며, 사망 또는 실종자 수만 2만 명에 달하는 큰 전쟁이었다.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는 '보스니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7)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향한 야심


역사적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는 여러 인종들이 살았다. 그리고 세르비아와 국경을 접해 있는 관계로 많은 수의 세르비아인들이 살았다.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한 이듬 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도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그러나 1년 전에 독립한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는 것을 골자로 한 '카라조브제보(Karađorđevo Agreement)협정을 맺는다. 크로아티아는 영토를 확장하고 싶어했고,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을 몰아내고 싶어했다.



8)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과 보스니아 내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투표거부에도 불구하고 보스니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의 참여로, 투표가 효력을 가지 위한 조건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투표 결과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스릅스카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보스니아 지역을 공격한다. 그리하여 [보스니아인+크로아티아인] vs [세르비아인]의 형태로 전쟁이 시작되나, 크로아티아가 보스니아 지역으로의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참전하면서,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이 서로 물고 뜯는 양상으로 바뀐다.


하지만, 세르비아인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지원을 받고, 크로아티아인은 크로아티아에서 지원을 받았으나 아무런 지원이 없던 보스니아인들은 매우 큰 피해를 입는다. 방화, 약탈, 강간은 물론이고, 인종 청소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로 많은 보스니아인들이 죽었다.



9) 종전,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이후, 스릅스카 공화국을 지원하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국제적 경제 조치가 내려지나 인근 국가와의 밀수로 인해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세르비아군이 사라예보(Sarajovo)의 시장에 폭격을 가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반전에 대한 여론이 조성된다. 이에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있던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군수물자와 시설을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1995년, 미국의 테이튼에서 체결된 협정으로, 전쟁은 끝나게 된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인정하며,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인+크로아티아인)와 스르프스카공화국은(세르비아인) 함께 공존한다. 두 세력은 영토의 50%를 각각 나누어 갖으며, 대통령과 사법권을 각각 가진다. 아울러 대통령은 세 민족이 8개월씩 번갈아 가면서 맡는다.

  • Capt.Kwon 2015.12.20 02:43 신고

    와, 여기에 제가 궁금해했던 내용이 모두 정리되어 있었군요.
    저도 구 유고슬라비아를 여행하면서 이 나라의 역사에 관심이 생겨 박물관도 둘러보고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언어문제도 있고 기본지식이 없어서 한계가 있었지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된 사건이 테이튼 협정이었군요. 진작 이곳을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lifephobia 2015.12.20 10:44 신고

      그냥 관심이 생겨서 정리해 놓은 글인데,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내용이 복잡하고 헷갈려서 상당히 어려워 했는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필력이 후달려서 글을 어렵게 써놓은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