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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여행 - 걸어서 국립도서관과 이낫쿠자, 그리고 라틴브릿지 /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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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타 타비야(Žuta Tabija / Yellow Bastion)'에서 내려왔다. 하늘에는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이내 어두워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두워지면 사진 찍기가 힘들텐데, 마음이 불안해졌다. 지도를 보며 강을 따라 볼만한 스팟 몇 군데를 찍었는데, 해가 지더라도 찍어놓은 곳만은 꼭 가보고 싶었다. 느리디 느린 나를 탓하기도 하고, 빨리 가버리기만 하는 시간에 야속해 하기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의외일 정도로 관광객이 너무 없어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 시간의 스플리트라면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할텐데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독사의 비늘같은 이 건물의 줄무늬가 범상치 않았다

'국립대학도서관(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of Bosnia and Herzegovina)'인 이 건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부터 1945년까지는 시청이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드 황태자'가 암살 직전에 들린 곳이기도 하다



사라예보를 관통하는 '밀야츠카 강(Miljacka)'을 봤으나

한국인에게는 이건 강이 아니라 또랑이나 개천 정도로 보일 뿐

사실 유럽에서 한강정도 되는 스케일을 가진 강은 드물다



'세헤르 세히야(Šeher-Ćehaja)다리'를 건너며 동쪽으로 사라예보를 바라보았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하면 아름답거나 화려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런 털털하기만한 모습이 좋았다



사라예보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인 '이낫쿠자(Inat kuća)'

여기서 한 번 뭔가를 먹어보고 싶었으나 혼자이기도 했고

이미 케밥으로 배가 부른 상태였으며,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패스



이 건물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약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이야기니까 실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이 건물은 원래 '밀야츠카 강(Miljacka)'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국립대학도서관(구 사라예보 시청)의 자리에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뒤 사라예보 전역에 많은 건물을 세웠는데, 국립대학도서관 건물(그 당시에는 시청)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다른 건물을 세울 때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는데, 국립대학도서관 건물을 세울 때는 어떤 할아버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벤드리야(Benderija)'라는 이름의 할아버지였는데, 그는 자신의 집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절대 자신의 집을 양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건물터가 있어야 공사를 하는데, 건물터에 할아버지의 집이 떡하고 자리잡고 있으니, 당연히 공사가 진행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오랜기간동안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보상금과 자신의 집을 강 건너편에 그대로 옮겨주는 것을 요구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1895년에 일어난 이 일 이후로, 이 집은 매우 유명해졌다. 그리고 1997년에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이낫쿠자(Inat kuća)'의 뜻은 '심술 궂은 집(Spite House)'이다.



저 건물은 10년 째 보수공사 중이라고 한다

특이한 건 옥상의 저 왕관무늬인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이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보스니아는 이슬람권이 맞다, 그러나 정작 이 건물을 디자인 한 사람은 체코 건축가라는 거



잠시, 아주 잠시 강가를 걸었다

여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한강을 보고 기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봐도 우리동네에 있는 안양천보다도 작았다



여행하는 동안 개들이 무리지어 있는 걸 몇 번인가 봤다

큰 개들이 무리지어 있는 데다가, 모양새가 떠돌이 개 같아서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딱히 사람에게 적대심을 드러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라예보에는 그 이름을 딴 맥주가 있다

'사라예보(Sarajevo)' 또는 사라예브스코(Sarajevsko)' 맥주가 바로 그것!

공장이 가까이에 있어 들렸으나 들어갈 수 없는 붉은 건물 뿐이었다

사진을 몇 장 담았지만, 화각과 늦은 시간, 그리고 그늘진 골목 때문에, 건진 게 없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던 '성 안토니 성당(Church of Saint Anthony)'

로마 카톨릭 성당인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들어가진 않고 밖에서만 봤다

언뜻 보면 맥주공장이랑 연계된 건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성당도 사진을 찍기에 각이 애매해서 한참을 고생했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지나갔던 '황제 모스크(Emperor's Mosque/Careva Džamija)'

가지후스레브-베그 모스크에 비하면 작지만 황제가 직접 만든 모스크라 상징성이 있다고



원래는 15세기 경에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그 세기 말에 기독교인에 의해 파괴되고

슐탄 슐레이만이 1565년에 다시 원복시켜 놓은 모스크라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다다른 역사의 현장, '라틴 브릿지(Latinska ćuprija / Principov Most)'

프란츠 페르디난드(Franz Ferdinand) 황태자가 암살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

그러나 정확한 암살장소는, 다리 건너편의 Museum 이라 써진 건물의 앞이다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고 : [ 클릭 ]




해가 져가는 사라예보의 밤

낮에 그랬던 것처럼, 밤에도 화려하지는 않았고, 인적도 적었다

오늘이 지나가면 하루 밖에 남지 않는데..



1914년 6월 28일 이 자리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과 그의 아내인 소피아를 암살했다

건물 벽에 붙어있는 표지판



역사를 재현하자면, 프란츠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부는 이 길의 위쪽 끝에 있는

국립대학도서관 건물(구 사라예보 시청) 건물에서 나와 차를 타고

지금 보이는 길을 위에서 부터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운전기사는 길을 잘못 들어 우회전을 하게 되는데

그 순간 총성이 울리고 부부는 피격당한지 15분만에 사망한다

이로 인해 촉발된 전쟁으로 전 세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역사가 방향을 튼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사실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한 나라는 세르비아이다. 세르비아 과격단체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을 암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세르비아는 승전국이 되었다. 그리고 황태자를 암살당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멸망하였고, 함게 동맹을 맺고 싸운 독일제국, 오스만투르크도 함께 멸망하여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다. 뭔가 불공평한 것 같고, 세르비아는 아무리봐도 미워보이지만 지나간 역사가 그러하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고 [ 클릭 ]



'데스픽 하우스(The Despic House)'

원래는 어떤 상인의 집이었는데, 현재는 사라예보 박물관의 분점(?)이라고 한다

늦은시간이라 문이 닫혀, 사진만 찍고 지나갔다



라틴 브릿지가 있는 야경

이 인근에서 프란츠 페르디난드 황태자가 암살당한 곳이 가장 밝았다

가장 밝은 곳일지언정,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하면 그저 소박할 뿐이었다



영국에서 보는 2층 버스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현재의 영국에도 보기 드문 구형 모델이라는 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생각보다 어둡고 인적이 적었다

사라예보의 평범한 길



'젤레니흐 베레트키(Zelenih Beretki)' 라는 이름의 길

좁아 보이지만 술집도 많고, 호텔도, 은행도 있는 메인 스트리트다



'호텔 유럽(Hotel Europe)' 옆에 있는 '베데스탄(Bedestan)'

'베데스탄'은 오스만투르크 시절에 시작된 의류나 수공예품을 파는 지붕이 있는 시장을 뜻한다

늦은시간이라 문을 닫았으므로 그냥 외관만 담았다



숙소로 올라오며 콘줌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왔다

사라예보에 왔으니 그 이름을 딴 맥주를 먹고 싶었고, 이번 여행에서 팬이 된 콜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단 거까지



내 숙소는 'Residence Rooms'라는 호스텔이었다. 싱글룸으로 예약했는데, 체크인을 해보니 4층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다. 그리고 꼭대기 층에 있는 서재에 큰 쇼파같은 침대를 두고, 잠을 잘 수 있게 꾸려놓았다. 시설은 뭔가 좀 아닌 거 같다가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일반 도미토리의 시설은 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다.


조금 안좋았던 건 바로 옆에 주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는 것과, 화장실/샤워실은 주인 내외와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들(영어를 느리게 하는 남자 호스트와 그의 어머니, 특히 그의 어머니!)이 너무 친절했고, 사용할 때 내스스로 눈치를 봤을 뿐 특별하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에서 보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서 아이패드로 이것저것을 하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해도 충전이 안되었던 것.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으나 실패. 60% 정도 남은 배터리를 아끼려고 아이패드를 닫았다. 대신에 아이폰으로 지금 있는 사라예보에 대한 정보와 다음 목적지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리고 D-1이라 수수료를 물겠지만, 사라예보에 하루 더 묵기로 했으므로, 모스타르의 숙박을 취소했다.


단 거를 먹고, 콜라를 마시고, 맥주를 먹었다. 워낙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술 맛도 구분 못하는 지라 맥주의 맛은 그냥 맥주였다. 그러나 먹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