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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4 포르투갈

포르투갈 여행 - 신트라 : 포르투갈 왕가의 여름별장, 페나성(내부) / 20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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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부터 동화같은 느낌의 '페나성(Palácio Nacional da Pena)'을 기대했다. 그리고 '무어인의 성(Castelo dos Mouros)'을 오르고 신트라를 더 구경하고자 '카스카이스(Cascais)'를 일정에서 제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리스본의 날씨가 좋아서 '계획한대로 가면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다. 내 발목을 잡은 건 잔뜩 흐린 날씨.


게다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어떨 때는 부슬비가 내리다가 또 어떨 때는 쏴아아~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져서 비 피할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운동화는 물에 다 젖어 찝찝하고 비를 맞은 몸은 눅눅해졌다. 설상 가상으로 페나성은 산 꼭대기인지라, 바람이 매우 무섭게 몰아쳤다.


추웠다. 아니, 비바람에 젖은 몸은 점점 더 추워졌다. 함께 있던 유카도 상당히 추워해서 실내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깥을 대충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동 페르난도 2세(D. Fernando II)'의 흉상

그는 수도원 폐허였던 이 곳을 성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갈게요



들어가자마자 있는 좁은 사각형의 공간이 있었고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때가 좀 많이 타서 아쉬웠다는



아름답고 화려했던 포르투갈 왕가의 식당

식탁의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이 있었는데

'아멜리아 왕비'가 결혼할 때 파리(Paris)에서 보낸 선물이었다고 한다



이 멋진 방은 '동 카를로스 1세(D. Carlos I)'의 방이다

사진을 담을 때는 엄청 어둡게 찍혔는데, 보정을 하고 나니 대박인 사진

원래 공간의 느낌보다도 더 잘 나온 거 같다



그 방의 옆에 있던 욕실인데

1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스타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문득, 요즘에 우리가 쓰는 욕조는 옛날에는 왕가에서나 썼던 것이구나, 싶었다



잠시 복도를 걸었다

갑갑한 내부에서 이 쪽으로 나오니 공기도 신선하고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런 공간이 왜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더라는



복도에 사람이 한 명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뭔가 하고 보니까, '성 제로니모(S. Jeronimo/S. Jerome)'를 기리는 채플이라더라

그런데 놀랬던 건, 조개껍질, 조약돌, 도자기와 유리로 만든 것이라서



걷다보니 오래지 않아 마치 교회 같은 큰 방이 나왔는데

그 방의 한 켠에는 이렇게 미사/예배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제단이 있었는데, 엄청 예뻐서 예술작품인 줄 알았다

주로 석고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는데 색깔이 너무나 예뻤고, 르네상스 스타일의 조각도 화려했다

이 성이 19세기에 지어진데 반해, 이건 16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곳이 수도원이었던 시절에 있던 채플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곳은 원래 수도원이었고, 벼락을 맞고 폐허가 되나 채플은 피해가 없었다고 함)



그리고 제단 오른편의 모습

테이블 위에 십자가가 있었다

아마도 사제가 앉아 미사를 집전하던 곳이 아니었을런지



여기가 아마도 에밀리아 왕비의 방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붉은 색을 좋아했는가보다, 그리고 특히 벽이 너무나도 예뻤다

조금 의아했던 건 침대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



사진 속의 여자가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인 에밀리아이다

이 성의 세 번째 주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혁명 이후 프랑스로 추방당하게 되는데

이 성을 너무 사랑해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 곳에서 보냈다



방의 천장을 담았다, 방 전체를 덮고 있는 저 무늬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호기심에 살짝 만져봤다가 안내원에게 걸렸다

'만지지마세요!' 라는 꾸중을 듣고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더라

마치 타일처럼 정사각형의 나무 판에 조각을 하여, 그 위에 색을 칠한 것

눈 앞에서 들여다봐도 판과 판의 경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교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약간 독특한 느낌의 티폿과 잔

으음, 내 취향은 아니다



그리고 진짜 깜짝 놀랬던 거

벽을 보면 굉장히 화려하게 조각이 되어 있는데

저게 진짜 조각이 아니고, 그림이다, 그림 (천장 뼈대는 진짜임)

사진으로 찍어놓으니까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진짜같다, 우와



천장도 뼈대만 진짜고 장식은 전부 그림이었다

벽도 그림이었고

유카가 갑자기 뒤를 돌아봐서 함게 담겼다



어느 방에선가 봤던 종교적 의미가 담긴 모형들



우리나라로 치면 덕수궁에서 하마를 본 느낌이랄까?

나라를 막론하고 왕궁이라는 이름의 문화재에서 하마를 본 건 처음이라 눈에 확 들어왔다

하마는 아프리카에 사는데..



그리고 감탄사를 내며 한참을 바라봤던 도자기로 만든 바이올린

그리고 저 흰색과 파란색과 황금색이 절묘하게 섞인 모습을 보라

집에 가져가서 두고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아까는 하마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거북이다

그런데 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아, 이 아이도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오른쪽 앞다리는 공중에 떠 있는 세심한 디테일



그냥 샹들리에를 담은 사진



포르투갈은 건물 외벽에 때가 잘 타는 파스텔톤의 색깔을 주로 입히는데

이 곳은 실내에 그렇게 파스텔 느낌의 핑크색과 흰색으로 장식해놓았다

부드러운 분위기가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듯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만약 건물 외벽에 때가 안탄다면, 도시 전체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대성당의 창문이 아닌 그냥 일반 창문에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장식해놓았다



출구 직전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전시실이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간략하게 설명이 있었으나

자세히 볼 건 아니고, 그냥 그림 위주로 둘러봤다



일부는 깨져있기도 했고 비어있기도 했다

그런데 흔히 알고 있던 모자이크 형식이 아니라, 그림과도 같아서 조금 신기했다



한 켠에는 유리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병과 유리잔과 도자기 그릇들

지금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기술이었을, 유리에 그림 얹기



그리고 전체 전시물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아이

상당히 화려했고 굉장히 디테일해서 옷의 주름이나 손의 명암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흰색과 파란색과 황금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



전체적으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안개는 아직도 자욱하고 바람도 심했으나

비가 많이 잦아들어 우산을 쓰거나 비를 피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카페 쪽으로 와서 성을 한 번 바라봤다



확실히 카페가 있는 쪽이 전망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기에도 구도가 더 좋고, 사진도 더 예쁘게 나왔다



알록달록한 느낌의 마치 동화같다는 페나성을 기대하고 왔는데

내가 본 페나성은 그렇게 그로테스크 하고, 기괴할 수가 없었다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가는 길

운이 좋게도 내려가자마자 버스가 있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페나성은 생각보다 최근에 지어졌다. 200년도 안 된 신식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양식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그러한 문화적 중요성 때문인지,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는 이 곳은 원래는 포르투갈 왕가의 여름 별장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벼락을 맞고 불타버린 수도원의 폐허였던 곳이다.


약 150여년 전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동 페르난도 2세(D. Fernando II)'는 왕자 시절에 이 곳에 잠시 왔었는데, 이 곳이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된 이후에 폐허가 된 수도원과 주변 부지를 매입하여 이 곳을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만든다. 그가 이 성의 첫번째 주인이었다. 특히, 그는 왕비인 마리아 2세가 죽은 이후, 두 번째 아내였던 엘리스(Elise, Countess of Edla)와 이 곳에 자주와서 지냈다고 한다.


그는 유언으로 성과 그 주변 일체를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엘리스에게 양도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가 이 성의 두 번째 주인이 되었다. 전해지기로는 이 유언에 대해 여론이 별로 안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포르투갈 왕가는 그녀와 협상에 들어가 약 5년 후에 페나 성을 다시 사오게 된다. 가격은 그 당시 가격으로 약 4억 1천 에스쿠두(현재 환율로 약 31억원)에 이르고, 페나공원 내에 그녀가 평생 살 수 있는 작은 별장을 마련해주는 조건이었다.


성이 다시 포르투갈 왕가로 귀속됨에 따라, 성의 주인은 '동 카를로스 1세(Don. Carlos I)'와 그의 왕비인 아멜리아(Rainha D. Amélia)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여름을 보내기 위해 자주 왔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1890년부터 '동 카를로스 1세(Don. Carlos I)'가 암살당하는 1908년까지 약 8년 간 이 성의 주인이었는데, 때로는 영국의 국빈을 이 성에서 맞이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성의 마지막 주인은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인 '동 마누엘 2세(Don. Manuel II)'이다. 왕과 왕세자가 살해당하면서 그가 왕이 되었고, 성의 소유권이 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는 포르투갈의 왕이라 리스본에 있어야 했지만, 그의 어머니인 아멜리아가 이 성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이 곳에 함께 머문다. 그래봤자 민주혁명이 일어나기까지 2년 정도이다. 1910년 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제가 폐지됨과 동시에 포르투갈 왕가가 포르투갈에서 추방됨에 따라 이 성의 소유권은 포르투갈 정부로 귀속되었으며, 그 이듬 해인 191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이래,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