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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한겨울 계방산 정상에서 캠핑하기 / 2013.1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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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12월 한겨울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눈 쌓인 산꼭대기에서.


카톡방에서 망구가 뜬금없이 캠핑을 가지고 했다. 고생이 뻔히 보여서 귀찮다며 안가려고 했으나, 앞으로 애기가 생기면 이렇게 셋이서 모여서 뭔가 하기는 힘들다는 말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오랜 친구 셋이서 마음 편하게 놀러가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 번 드니까, 가지 않을 수가 없더라.


우리가 갔던 곳은 강원도의 운두령. 산 이름은 계방산이다. 정확하게 어떻게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망구가 가자는 곳으로 갔으니. 네비를 찍었는데, 뭐라고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7개월이나 지나서 포스팅을 하자니 기억이 안나는 게 많다. 아 맞다, 나는 이 캠핑을 위해 침낭을 샀더랬다.



내 생애 두 번째 캠핑이라 뭔도 모르고 그냥 하라는 대로만 했음

처음에는 구스다운 점퍼를 입었으나, 올라가는 도중에는 더워서 벗게 되더라는

크로아티아 배낭여행을 위해 샀던 킬리(Kili) 배낭이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가방을 고쳐매고 있는 졸부



운두령에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차를 대로 1.2Km를 걸어왔다

목적지까지는 약 3.6Km 나 남았는데, 문제는 해가 지고 있었다는 것



인적없는 눈쌓인 산 길을 서둘러 갔다

힘들기는 엄청 힘들더라는



잠시 숨을 고르는 중

셋 중에 짐이 가장 무거운 망구

많이 힘든 모양이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석양을 받은 눈이 노르스름해졌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하니, 서둘러야 했다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다

생전 운동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니 엄청 힘들었다



진짜 겨울 같은 이런 풍경

이 이후로는 힘들기도 하고, 서두르기도 해서 사진이 없다



결국 해가 진 이후에야 정상 근처에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이 사진을 찍은 후에도 약 10분 정도를 더 갔던 것 같다



도착하니 노란색의 거대한 텐트와 몇 개의 작은 텐트가 있었고, 텐트 내부의 불빛으로 인해 텐트 외부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남자도 있는 것 같았고, 여자도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으므로 그 근처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먼저 땅을 고르고, 비닐을 깔고, 텐트를 치는 사이에 해는 완전히 기울어져 밤이 되었다.


문제는 밤이 되니까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서 엄청 추었다는 것. 원래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모닥불처럼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으려 했으나, 실패! 고기도 몸도 녹일 수가 없었다. 바깥이 추워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으나 2인용 텐트에서 세 명이서 있기는 비좁았고, 그나마도 텐트가 여름용이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밖이나 안이나 똑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캠핑이고 뭐고 그냥 하산하고 싶었지만, 밤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핫팩을 까먹고 그냥 왔다는.. 그 때의 기분은 그저 후회막심.


불을 피우는데 실패한 우리는 비좁은 텐트에서 캠핑용 버너를 이용해 라면을 끓여먹었다. 간단히 맥주도 먹었다. 음식을 조리할 동안은 잠시 따뜻했으나 이윽고 다시 추워졌다. 나랑 졸부는 추워죽겠다고 투덜대기 시작했지만, 망구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각자의 침낭에서 잠을 잤다. 나랑 졸부가 한 텐트에서 같이 자고, 망구가 다른 텐트에서 혼자 잤다. 다른 것보다도 발이 아플 정도로 시려서 잠을 잘 못잤던 밤이었다. 핫팩이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ㅠ_ㅜ



다음날 아침, 어떻게 일어난 줄도 모르고 일어남

잠을 잤다기보다는 잠깐씩 졸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

왼쪽의 텐트에서 졸부랑 나랑 자고, 오른쪽에서 망구가 잤음



낮은 구름인지 안개 사이로 산등성이가 살짝보이던 경이로운 풍경



저 아래는 짙은 안개가 끼어있고



어제 도착했을 때는 밤이라 잘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절경이었다

겨울산과 눈과 안개같은 구름이 빚어낸



옆 텐트 분 중 한 분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다들 주위에 오들오들 떨어서 상태가 말이 아니다



덜덜 떨면서 밤새 한 숨도 못잤지만

새벽에 보는 이런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 멋져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피곤한 졸부



나랑 졸부

신나보이지만 아침이 되어도 추운 건 매한가지였다



해가 뜨면서 우리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뒤에 계신 여자분은 우리랑은 다른 일행인데

패딩 바지에 패딩 신발에.. 장비가 엄청 부러웠다



곧 등산객들이 몰려 올라올거라는 망구의 말

그들과 마주치기 전에 먼저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짐을 패킹하는 중



저 노란 텐트 일행은 저 안에서 아침을 먹더라

너무 고맙게도 납작 만두와 원두커피(!!)를 하나씩 주셔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만두랑 따뜻한 원두 커피를 먹고 힘내서 다시 짐싸는 망구



우리는 짐을 간촐하게 추려도 힘들었는데

저 팀은 저 장비를 어떠헤 여기까지 들고 왔는지, 미스테리였다

솔직히 장비가 부럽긴 하더라, 추위만 덜 탔어도.. ㅠ_ㅜ



짐 정리를 끝내고 저 쪽 분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담았다

셋이서 담은 사진 한 장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돼지같이 나왔네 ㅋㅋ

에잉



짐을 싸고, 서둘러 출발했다. 망구가 말하길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둘렀다. 이 때가 아마 오전 8시 정도 되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해뜨고 난 직후였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하산해서 밥을 먹기로 했으니.


내려가는 동안 망구가 말했던 등산객들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둘러 내려갔다. 일단 이 지옥같이 추운 곳을 벗어난다는 생각, 그리고 뭔가를 먹을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쉬웠다.


거의 다 내려왔을즈음, 저 앞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가까워지면서 조용했던 산의 정적은 깨졌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떠들거나 웃는 소리. 밤새 고요함에 익숙해져 있던 나의 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순간 '아, 이제 다시 속세로 내려오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산에서는 조금 조용히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악회인 모양이었다. 그런 무리들을 서너 번이나 더 마주쳤고, 그 때마다 우리는 길을 양보했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고, 그들은 어김없이 시끄러웠다. 어림작아 거의 2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길을 양보했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건 4번 뿐이었다. 어른들의 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아쉬웠다.


하산이 끝나기 직전, 코너를 돌면 주차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계단이 나오는데, 깜짝 놀랬다. 그 좁은 길에 관광버스 여러 대가 있고, 차들이 넘쳐서 길가에 주차되어 있어서. 새삼 망구따라서 일찍 내려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서둘러 차에 짐을 싣고 그 시장통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홍천으로 가서 닭갈비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