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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4 대만

타이페이에서 마주한 대만의 슬픈역사 - 228 화평공원 /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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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페이 여행을 막 시작했다. 타이페이의 명소인 중정기념관을 들렀지만, 내부는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주변둘러보고 난 후,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시먼(Ximen)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유명한 명소를 가는 것도 참 좋지만, 때로는 명소가 아닌 그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참 매력적이라, 그럴려고 했다.


걷다보니, 오래지 않아 '228 화평공원'의 입구를 발견했다. 공원의 이름에 '화평'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이 예사롭지 않겠다 생각하고 들어섰는데, 역시나 그냥 조성된 공원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정부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차원에서 조성된 공원이었던 것. 공원자체는 산책하기 좋았다. 내부에는 228기념관도 있어, 역사적 과오를 잊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중정 기념관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이 곳은

'228 화평공원(228Peace Park)'이다

그냥 공원이지만 그 의미를 알고나면 정말 슬픈 곳이다



공원 입구에는 놀이터가 있어

아이들과 엄마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공원 철조망에 붙여놓은 흰 리본들

이걸 보니까 세월호 생각이 났다



바로 옆에 228기념관이 있어 가봤더니

오늘은 무슨 날이라 입장료가 무료(원래는 20NTD)였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봤다



228사태 당시 뿌려졌던 전단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대만의 228 사건은 간단히 정리하면, '중국의 민주화를 외쳤으나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흘러 들어온 중국 본토 출신의 사람들이 대만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우선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세계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는 장개석의 국민당을 위시한 중국 본토 출신의 중국인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본토에서의 전쟁 때문에, 대만의 내정이나 정치에 신경을 쓰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그대로 따라하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놈들보다도 더 독하게 통치했다고도 한다. 대만 원주민 사이에서는 '개가 가니, 돼지가 왔다'는 말로 풍자되었으며, 원주민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1947년 2월 27일, 대만 원주민 여성이 타이페이역 앞에서 담배를 몰래 팔다가 중국인 경찰에게 걸렸다. 그런데 그 중국인 경찰이 원주민 여성을 구타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주변에 있던 대만 원주민 남성들이 거세게 항의하였다. 그러다가 경찰이 일반인을 향해 총을 발포하여 시작된 사태이다. 그 다음 날인 2월 28일, 타이페이 전역에서 대만 원주민들이 데모와 파업 등의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그 다음 날인 3월 1일에는 그 소요가 섬 전체로 퍼졌다.


당시 중국본토에서 공산당과 전투 중이던 장개석의 국민당은,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이것이 폭동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자, 계엄령을 내리고 군 병력을 대만으로 보내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이 때 내려진 계엄령은 38년 동안 유지되다가 1897년에 해제되었다. 그동안 대만 내부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터라, 정확하게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건 발생 45년 후인 1992년에 대만정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3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수십 배가 될 지도...


이 228 화평공원은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1997년에 대만 정부가 사건의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곳이다. 그리고 228 기념관은 한 때 금기였던 대만의 슬픈 역사를 잘 정리해 놓은 곳이기도 하다.



228기념관의 내부에는 당시의 사진이나

문서, 전단지 등 많은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다만 중국어 뿐이라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음



전시관 내부에 있던 동상의 표정이 너무 리얼했다

이 여성은 임산부였고, 옆에는 남자도 있었는데

다들 표정이 너무 슬픈 분노에 차 있었다



전시관의 끄트머리에는

이렇게 메시지를 적어 걸어두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저 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서



무거운 마음으로 228 전시관을 나와서 걸었다

제법 큰 호수가 있었는데

큰 거북이가 둥실둥실 떠 다니고 있어서 담았다



호수 한가운데에는 굉장히 멋진 건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처마 끄트머리가 급경사로 마무리되는

중국의 건축양식을 좋아하진 않는데, 이건 좀 괜찮았다



잠깐 호수와 중국풍의 이름없는 건물을 구경하다가

천천히 걸어서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몰랐는데, 국립대만박물관의 정문

시먼(Ximen)으로 걸어가는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박물관이라는 걸 모르고 그냥 지나쳐갔다



대만의 228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공원과 228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흥미가 생겨,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습득했다. 전시관 내부는 아쉽게도 중국어 외 다른 언어의 표기가 없었다. 뭔가 들뜬 마음으로 왔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학살하다니. 그것도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섬의 원주민을 죽이다니. 그나마 지금이나마 대만 정부가 과거의 과오를 시인하고 사과한 것을 다행이라 해야할까. 하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저런 머릿 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길을 따라 시먼(Ximen)으로 계속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