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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세상에서 가장 조용했던 겨울바다 - 화진포 해수욕장 / 20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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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여행을 되돌아보는 일은 마치 낡은 앨범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여행은 2004년에 다녀온 여행으로 햇수로는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 당시의 기억 중 일부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니 새삼스레 믿기지가 않는다. 갑자기 시간의 힘 앞에서 갑자기 겸손해져서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내가 신기하다.


새벽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새벽 차를 탔었다. 아마 간성으로 가는 차였을 거다. 새벽의 어스름이 깔리기도 전인 깜깜한 밤에 집을 나와 헐레벌떡 뛰어가서 겨우 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 차에는 나와 어떤 아저씨, 단 두 명의 승객이 있었다. 미리 알아봤던 소요시간은 약 4시간 남짓. 나는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중간에 휴게소를 한 번 들렸다. 태백산맥을 넘기 직전 어딘가에 있는 휴게소인 것 같았다. 입김을 내뿜으며 걸어간 편의점에서 아침식사 대용으로 차가운 아침햇살을 하나 사서 마셨다. 아침햇살을 데워서 파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 휴게소에는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버스를 다시 탔다. 


그러나 15분쯤 지났을까? 아랫배가 아프면서 소변을 보고 싶은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차가운 음료를 먹어서 그런 듯 싶었다. 기사님께 휴게소에 다시 한 번 들리자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꾹꾹 참았는데,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을 뿐 아니라, 소변을 참은 것이 이 날 보다 힘들었던 날은 없었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


화장실에 가서 천국을 경험하고 난 후, 터미널 건너편에서 시내 버스를 갈아탔던 것 같다. 그리고 서울에서처럼 버스카드를 대려했으나 현금 밖에 안된다는 기사님의 말. 그래서 지갑을 뒤져봤으나 1만원 이상의 지폐 뿐이라 난감해하다가가 어떤 승객이 지폐를 바꿔줘서 돈을 냈었다. 1천 얼마 였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얼마인가를 이동하고선 내렸다. 겨울이라 그런지 내리는 사람이 나와 어떤 여자 뿐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15분인가, 30분인가를 걸었다

저 편으로 보이는 화진포 호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놓았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도착한 화진포 해변

사람이 채 30명이 안될 정도로 별로 없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이게 여행이구나, 싶었다



내 발자국인지, 누군가의 발자국인지 모르겠다

모래 위에 곱게 찍힌



머리가 굵어진 후, 처음 오는 동해 바다였다

초등학교 때 낙산 해수욕장을 가고서는 처음이었던 동해바다

물이 맑은 걸 보고 감탄했었다




그리고 바닷가 한 켠에 있던 초소

초소에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에 화진포를 다시 다녀왔는데, 이 초소는 사라지고 없더라




안타깝게도 해변의 북쪽 끄트머리에서는 모래가 파도에 쓸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절벽과도 같은 모양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걷고 또 걸었다 



모래에 찍힌 새의 발자국

아마 갈매기의 발자국이었을거다



모래사장에 되게 넓게 그려져있던 곡선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며 생각해보니 파도가 치면서 모래에 그려놓은 것이었는데

선들이 서로서로 겹쳐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했었다

전체 사진을 찍었으나 잘 나오지 않아, 이렇게 바닥에서 담아봤다



그리고 바닷가 한 켠에 있던 깨진 부표

마치,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윌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화진표 해변을 걸었다. 바다는 이렇게 광활한데 사람이 없어서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9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 보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여하튼, 나는 북쪽 해변 끝에서 남쪽 해변 끝까지 제법 긴시간을 걸었고, 그 끝에 있는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을 구경했다. 그리고 인긴의 이승만 별장과 이기붕 별장도 다녀왔었는데, 이 두 별장은 그다지 크게 인상에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사진도 한 두 장 뿐이라 이야깃거리가 없다.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에서 바라본 화진포 해수욕장

김일성이 왜 여기에 별장을 지었는지 이해가 가는 절경이었다

여기에 가만히 서서 파도가 치는 모습과 그 소리를 한참이나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바닷가를 걸어서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되돌아왔다

사진은 해수욕장 중간에 있던 펜스인데 끝이 안보였다



왼쪽에 있는 물은 화진포 호수이고, 오른쪽에 있는 물은 동해바다이다

한국지리시간에 배웠던 '석호'라고 불리는 독특한 지형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화진포 호수를 바라보면서 이승만 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수는 너무나 잔잔했고, 매력적이었던 짙은 녹색

사진에는 없지만 갈대와 오리들이 구경거리가 되어주었다



이승만 별장 내부에서 사진을 담았다

그냥 작은 가정집 같은 곳으로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다

사진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고 하는 책상과 집기들



해가 지기 시작하려는 화진포 호수

뚜벅이 여행자였던 나는, 걸었던 길을 되돌아와서 집으로 향해야 했다



한참을 걷고 이 다리를 건너서 주차장으로 가서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전에 가보니, 이 다리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



화진포는 동해안에서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위로 몇 개의 해수욕장이 더 있지만, 군사적인 이유로 여름에만 잠깐 오픈하는 곳이라 이 곳처럼 겨울바다 여행은 불가능하다. 여행지로 이곳을 삼은 것도 이런 배경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가장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니. 혼자 가는 여행에 어떤 상징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이 곳은 한적해서 너무나 좋았다. 혼자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해변을 거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고. 이 모든 걸 여기서 처음해봤고, 그런 느낌이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바라볼 수 있었다. 혼자가는 장거리 여행으로는 첫 여행지라 그만큼 모든 게 강렬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얼마 전에 이 곳을 잠시 들릴 기회가 있었다. 뭐든지 빨리빨리 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곳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고,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여행기를 따로 올리겠지만, 이 곳이 내게 인상 깊은 여행지로 기억이 남아 있음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