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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4 대만

타이페이에서 지우펀으로, 그리고 지우펀(九份)시장 구경하기 / 20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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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우펀(九份)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MRT를 타고, 중샤오푸싱(Zhongxiao Fuxing/忠孝復興站) 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오자 마자 뒤로 돌아 사거리에서 좌회전. 50M가 채 안되는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이라는게 그냥 도로 한 켠에 표지판이 세워진 정도라서 여기가 맞는지 좀 헷갈렸다. 되려 택시가 많았다. 여튼, 그렇게 어디에서 버스를 타야하는지 탐색을 하고 있었는데..


노란 서류철을 든 중년의 여자가 다가와 '지우펀?' 이라며 말을 걸었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버스회사 직원일까? 아니면 사설 밴을 운영하는 여행사 직원일까? 그것도 아니면 택시와 연계된 삐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기서 버스를 타는 게 맞다는 걸 직감으로 확신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4~5명 정도 되는 다른 관광객들이 왔다. 역시 하이에나 같은 그녀가 그들에게 접근했고, 그들은 택시 두 대에 나눠탔다. 노란 서류철의 그녀가 내게 다가와 한 자리가 남는다며, 함께 타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까보다 가격이 많이 싸져서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그래도 나는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그 택시가 떠나고 잠시 후, 내가 타야할 1062번 버스가 왔다. 그리고 그 버스를 타고 제법 오래 달렸다. 지우펀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내 숙소는 Rita's House 였는데, 가는 길에 인도가 없어서 좀 당황했다. 여튼, 지우펀에 잘 도착해서, 짐을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타이페이와 달리 산 속이라 그런지 굉장히 습했고, 추웠다.



지우펀은 산 경사로를 따라 들어선 마을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망대가 있어 바라보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이더라, 아마 동중국해겠지



며칠 전에 갔었던 핑시, 시펀 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산기숡을 따라 건물이 들어서 있었는데

일부는 굉장히 낡아보이기도 했다



이리저리 헤메다가 들어건 곳이 시장 골목

아무 것도 모르던 나는

'우와~ 저게 홍등인가?' 싶어서 한 컷 담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시장의 끝까지 가려 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더라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가다가 되돌아 나왔다

'우와~ 또 홍등이다'



밤이 되면 저 홍등에 불이 켜지리라 상상했다

상점의 빛이 홍등의 아름다움에 방해가 되리라 걱정했지만

바보같이 순수한 생각이었다는, 하하



몸이 너무 춥고 으슬으슬해져서

지우펀 시장 입구에 있는 음식집에 들어가

따스한 팥죽 같은 걸 하나 사먹었다



양이 좀 부족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먹으니 좋더라

이렇게 떨어진 당을 회복했다



내가 팥죽같은 걸 사먹었던 집의 모습

장사가 엄청 잘되더라는

앉을 자리가 없어 잠시 대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시장통으로 나와

바글대는 사람들 속에 섞였다



아까 지나가면서 본 츄러스 같은 음식이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는 별로였다

유명하다는 땅콩 아이스크림은 줄이 너무 길어서 일단 패스



시장을 간단히 둘러보고

진과스(金瓜石)로 가기 위해 시장에서 나왔다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이었구나

지우펀 시장이라는 곳은



진과스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바라본 바깥 풍경

단체 관광객이 도착하기 시작해 Hell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우펀은 원래 산골 속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부락이라고 할까? 청나라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1600년대 이 곳에는 9가구가 살고 있었고, 도시에서 생필품 등을 구매할 때 9가구 것을 함께 구매해 나눴다고 한다. 그래서 9등분 한다는 뜻의 '지우펀(九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인근의 진과스 등과 함께 금을 생산하던 곳인데, 그 역사가 143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금광을 만들어서 금을 캐거나 했던 건 아니고, 사금 등을 채취하는 등의 원시적인 방법으로 금을 채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의 금광은 청나라 말기까지 개발되지 않고 있다가, 1890년대에 지룽까지 가는 철도를 놓으면서 인부들이 금가루를 발견한 것이 시초가 되어, 세간에 알려졌다. 이 소식을 듣고 사금을 채취하는 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불과 하루만에 몇 Kg 을 생산할 정도로 금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금광이 개발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지우펀이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금광은 1971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금광으로 흥한 도시라 금광의 폐쇄는 지우펀을 빠르게 쇠락시켰다. 그러나 1989년 영화 비정성시의 흥행에 힘입어 관광지로 다시 태어났다고. 아울러 2001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델이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찾는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