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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6.25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멈춰버린 곳 - 철원 감리교회 & 노동당사 / 200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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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돈으로 카메라를 산 이후, 혼자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쪽에 있는 무의도와 실미도를 걸으면서 여행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고, 동쪽 끝에 있는 화진포에서는 너무나도 황홀한 힐링타임을 가졌었다. 그리고나서 남쪽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북쪽으로 올라갈지 고민하다가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고 목적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 여행 스타일은 당일로 치고 빠지기. 차가 없었던 나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래서 보통 한 두 곳만 보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때에도 철원에 있는 포석정 등 여려 명소와 노동당사를 두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노동당사를 택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교과서에서 봤었던 노동당사.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건물 외에는 볼만한 것이 없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찾아가고자 했던 그곳.


그러나 대중교통으로 가긴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철원(동송)터미널까지 가는 건 어떻게든 되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노동당사까지 가는 차가 없거나 매우 드물게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노동당사까지 걸어서 가기로 하고 87번 국도를 걸었다. 지도를 찍어보니, 약 6km 정도 걸었더라. 지금이야 택시를 왜 안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 당시의 내게 택시는 사치였고, 여러모로 순진했던 것 같다.



87번 국도를 걸으며 동영상을 담아뒀었더라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아~' 하면서 기억이 났다



차가 곁으로 달리는 길을 걸었다

제법 오래 걷는동안, 그 누구도 마주치질 못했다

표지판을 보니, '도피안사' 라는 절이 있어서 잠시 들리기로 했다



아주 작은 절이었다

여태 봐온 절 중에 가장 작은 것 같았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고요한 절에 풍경소리만 울려퍼지던 순간

이 순간을 난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용한 산사에 울려퍼지는 풍경소리

세상에 나 혼자만 저 풍경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법 나이 든 테가 나는 다리가 보여 한 컷 담았다

로드뷰로 보니까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누가 걸을까, 이 다리를?



걷다보니 이런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겨울이라 황량하고 군사지역이라 차갑기만 한 풍경

여기서 새들만 가장 자유롭더라



노동당사에 거의 다 와서 '철원감리교회'라는 곳을 발견했다

전혀 알지 못하고 온 곳인데, 들어가보니 전쟁통에 부셔져버린 교회였다



관리사무소도 없고, 아무도 없이, 나 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는 가까이 다가가 돌을 만져봤다

6.25 때문에 바스러져 버린 건물의 잔해를





그리고 이렇게 몇 장의 사진을 더 담았다

도피안사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이 조용해서 좋았다

하지만 잔해 뿐인 건물을 보니 옛 전쟁의 순간이 상상되더라

이 건물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과 이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다시 노동당사를 향해 길을 떠났고

오래지 않아 저 멀리에 목적지가 보였다




철원감리교회와 노동당사는 상당히 가까워서, 걸어서도 금방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건물쪽으로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혼자서 차도 없이 여기까지 잘 도착했다는 성취감,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건물을 실제로 보는 경이로움,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는 건물 쪽으로 다가갔으나, 군청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도록 펜스를 쳐놓고 입구를 자물쇠로 막아놓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둘러보고는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오래 걸었기에 아픈 다리도 쉬어야 했고, 노동당사는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어디선가 들리던 자동차 엔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배경음에 불과했던 엔진소리였는데, 이 쪽으로 다가오면서 전경음이 되었고, 그 소리는 주차창에 차를 세우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내려다보니, 40대 중반쯤 되는 남자 두 명이 내려서는 계단으로 올라오더라.


순간,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관리인이 내게 따지려고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덜컥했다. 남/여가 내렸다면 데이트를 하러왔다보다, 라고 생각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40대 남자 두 명이 이 곳에 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군사지역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 두 명의 아저씨들이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인기척을 내지 않고 건물의 오른편에서 바짝 긴장해있었다. 


나는 괜히 머쓱해서 카메라를 든 채로 건물을 천천히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관광객이에요' 라는 티를 내고자.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아저씨들은 내게로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건물 입구에 이르게 되었는데, 펜스의 자물쇠가 열려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제서야 '아, 이 아저씨들이 공무원이구나' 싶었다. 당장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고 입구에서 아저씨들이 시야에 잡히기를 기다렸다가 한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여기 잠시 들어가도 되냐고? 조용히 사진 몇 장 찍고 선생님들 나가실 때 같이 나가겠다고.


그렇게 때마침 이곳을 방문한 공무원의 허락을 얻어 노동당사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그 때도 감사한다고 인사를 드렸겠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 곳은 그 당시에도 붕괴위험이 있어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한다고 하셨다)



내부의 벽들은 전쟁의 흔적인지, 많이 훼손되어 있었는데

그나마도 온갖 낙서로 도배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화장실

그런데 저 아래에는 쓰레기만 있었다



노동당사 내부를 걸으며 담은 동영상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콘크리트 건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벽돌로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2층에 올라와 사진을 몇 장 담았다

조명시설과 전기배선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벽의 흔적과 계단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건물 외관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기둥이 날아간 곳도 있고, 모든 곳이 상처투성이였다

벽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들



노동당사 건물의 가장 익숙한 모습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어딘가 차가운 인상을 주는 듯하고

건물의 색과 디자인도 뭔가 공산주의 느낌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 보고서는 깜짝 놀랬던 이정표

사회시간에 언급되던 평강이나 원산을 이정표에서 본다는 게 놀라웠고

숫자가 한자로 되어 있는 것도 신기했으며

여기저기에 총을 맞아 깨져있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주차장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린 버스를 타고 다다른 신탄리 역

이 곳에서 의정부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노동당사에서 역까지 얼마 걸리지 않아서, 버스타고 왔던 게 후회되었던 곳



내가 생각한 기차는 이런 기차가 아니었는데

이건 전철이잖아



아마도 기차는 이 위 쪽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가 싶었다

철마의 발길을 묶는 최북단 역이라고 하니



의정부로 돌아오는 티켓

이게 기차일 줄이야, 처음 타봤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동당사를 거쳐서 신탄리 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거기에 있는 매점에서 뭔가를 사먹었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버스를 타고 신탄진역까지 10분 내외로 걸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제법 오래 걸었기에 버스를 타고 온 걸 후회하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왔더라면 이리 편했을 것을.


노동당사에 되게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사진 파일에 기록되어 있는 시간을 확인해보니 채 1시간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달라서 새삼 놀랬다. 하지만 정말 조용했던, 동송터미널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던 여행이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여행이었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노동당사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었고.


이게 벌써 8년 전의 여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