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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6 일본 - 오키나와

오키나와 신혼 여행 - 8월 한참 더운 날에 둘러봤던 슈리성 /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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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나하 여행의 시작은 슈리성이었다. 우리는 숙소를 나와 오모로마치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역에서 내려 15분인가 20분인가를 걸었다. 비가 내리던 어제 저녁의 날씨가 화창하게 개인 건 참 좋았는데, 너무 더웠다. 햇빛은 살을 뚫고 들어오는 듯 했고, 땀은 비오듯 흘러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걸레를 쥐어 짜듯 나를 쥐어짜서 더이상 땀이 안나오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원을 걸어다닐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마우둔과 같은 슈리성과 함께 있는 부속 시설을 전혀 둘러보지 못했다. 아쉽고 또 아쉬웠지만, 더위먹고 쓰러질 것 같아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리성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비록 복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과 다른 다른 양식의 건물을 구경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관광이었고, 큰 공원을 걸어다는 것도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마음에 들었다. 딱 하나, 미친듯이 더웠던 것만 빼고.



살갖이 타들어가는 날씨였는데

슈리역에서 15~20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인 슈리성이 보이면서 힘이 났다



거뭇거뭇한 벽이 이끼처럼 보이는

초록 식물과 함께 시간을 잔뜩 머금은 듯한

그런 인상을 받아 내부도 기대가 됐다



절친인 양산도 없이 땡볕을 걷는 HJ

여기까지 걷는 것만으로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그늘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했음



저 앞에 슈리성에 들어가는 첫 문인

'칸카이몬(歓会門)'이 보였다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기도 했던 이 문은

'환영' 한다는 뜻의 '칸카이(歓会)'가 그 이름이라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소실, 1974년에 복원



성루는 몇 년 전에 대만에서 봤던 것과

상당히 비슷해서 아마 중국의 양식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성과 달리 벽이 굉장히 높아

방어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날도 덥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는 HJ



계단을 오를 수록 주변의 풍경은

점점 더 멋있어졌다



'로코구몬(漏刻門)'이라는

물시계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문을 지났다

물시계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장영실만

생각나는데, 외국에도 있던 모양이다




거뭇거뭇한 성벽에 깃든 오랜 시간이

푸른 숲에 잘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운 것 빼고)



신을 떠받는다는 뜻의 '호우신몬(奉神門)'

여기까지는 무료로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입장권을 구매하기로 했는데

매표소 직원이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 깜놀!



슈리성의 액기스라 할 수 있는 '세이덴(正殿)'과 광장

이 건물은 역사적으로 3번이나 화재로 사라지고

1992년에 4번째로 복원 되었다고 한다



세이덴 앞에 있던 광장의 주황색 줄도 인상적이었다

문무백관들이 모일 때, 직급 별로 줄을 맞춰서는

용도로 활용 되었다고 전해진다



슈리성을 포함한 공원 전체의 스탬프를 찍는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었는데

너무 더워서 3개 찍고 포기했다



세이덴, 그러니까 정전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사진 촬영이 안되는 구역이 있었다

특히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구역이 그랬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에서 몇 컷 사진을 담았다



일본 목조 건물의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인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을 각 맞춤



'고쇼인(御書院)'이라 불리던 이 곳은

류큐왕국의 왕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고쇼인 옆에는 세자들이 머물던 공간인

'사스노마(鎖之間)'가 복원되어 있었는데

다다미가 잘 깔려 있어 잠시 앉아

그리고 잘 꾸며진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스노마를 다른 곳에서 바라본 모습

그 앞의 정원은 그 옛날 류큐국이 중국 등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만든 정원이라 한다

(지금보면 큰 감흥이 없지만)



슈리성의 세이덴 내부는 사진처럼

온통 빨간색인 곳이 많았다

류쿠국을 상징하는 색이 빨간색이었나 봄



류쿠왕이 앉아 있었을 옥좌

'중산세토' 라는 편액은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로부터 하사받았던 것의 복원품

아마 우리나라처럼 중국의 비위를 맞추면서

이 곳의 왕들도 살아갔던 것 같다



이제 출구가 가까워져 온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흰 봉지는

바로 신발 주머니



햇살이 뜨거웠어도 밖으로 나오니

한결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진짜 세이덴의 기단이 남아 있는 부분

현재 우리가 둘러본 건물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복원되었는데, 원래의 위치보다 70CM

정도 높여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기념품 가게와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니

에어컨이 가동되어 천국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슈리성의 모형



에어컨 바람과 헤어지기 싫었으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살살 출구로 내려가는 길



공원 너머에 도시가

도시 너머에 바다가 보였던 풍경



이 곳은 아직 복원이 진행 중인 곳 같았다



우리는 사진 속 사람들처럼

이 계단을 내려와



사진 속 내리막 길로 내려갔다



그리고 오른쪽의 출구로

슈리성을 나섰다



슈리성은 현재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편입되기 전에 있던 류큐 왕국의 왕궁이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것은 1879년의 일이라,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고 들었는데, 현지에서 그런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


왕궁 자체는 12~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 지어진 연도가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1409년에 중산이 3개의 왕국(북산/중산/남산)을 통일해 류큐 왕국이 탄생했고, 그 이후로 왕궁으로 쓰였으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사신을 맞이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609년, 규슈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던 사쓰마 번의 속국이 되어, 왕궁의 기능은 사실상 상실하게 된다. 근대에 이르러 일본에 의해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세계 2차 대전 중에 육군 32부대의 총사령부로 활용 되었다가 미국의 공격으로 완전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나무로 된 왕궁 건물은 1945년 전후로 사라졌지만, 돌로 된 성벽은 남아 있었는데, 한때 이 성벽 위에 류큐대학 건물이 들어서 있기도 했다. 이후 학교를 이전시키고, 남아있던 사료를 바탕으로 상당수의 건물을 재건했다. 그리고 류큐 왕국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만, 슈리성의 건물들이 아닌, 세이덴 앞의 광장만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