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호브(Hove)의 로컬 펍, '넵튠(The Neptune)'에서의 어떤 날

2018.10.07 00:36

2018년 기준으로 11년 전인 2007년. 나는 영국 '브라이튼(Brighton)'에서 살고 있었다. 먼저 브라이튼에 정착한 졸부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그가 쓰던 방을 물려받았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사를 해서 영국에 완전히 정착했다. 그리고 한두 달이 지난 3월 어느 날의 기록이다.


나는 브라이언/준준 부부의 집에 있는 방 하나를 빌려 살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이 친해졌다. 특히, 브라이언과는 각별하게 친했는데, 내가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런 친구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와는 짝짜꿍이 잘 맞았다. 그는 은퇴한 국제변호사였기에, 우리는 매일 술을 마시고 오만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가 말하다가 버벅거리면 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줬고, 틀린 표현을 정정해주거나 고급 표현을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여하튼, 어느 날 그는 내게 자기가 좋아하는 로컬 펍에 같이 가자고 했고,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그 펍에는 브라이언의 영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를 아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펍에 있던 백인 중 일부는 내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다음에도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그다음도 그랬고, 또 그다음 차례도 그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펍은 로컬 펍이라 영국인들만 출입하는 곳이라고. (11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에서 한국어로 검색해봐도 검색 결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은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동양인인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되려 그의 친구들을 소개하여주고, 나를 백인들에게 소개하여 줬다. 덕분에 나중에는 브라이언의 친구들과도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집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내 술 값은 모두 그가 냈다.


하루는 카메라를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챙겨 들었다. 그리고 그 펍, '넵튠(The Neptune)'을 담았다. 당시 이 펍의 주인은 '롭(Rob)'이라 불리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매력 터지는 남자였다. 브라이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고, 우리는 영국 인디 밴드 '맨선(Mansun)'과 '큐어(The Cure)'를 소재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원래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서 운영한다고 했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혹시 내가 알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을까?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으니, 글이 너무 길다.



메뉴와 글라스로 파는 양주들

익숙한 것도 있지만 낯선 것도 있었다



술에 취해 내 카메라에 흥미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던 말썽쟁이 아저씨들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종업원은

독일 사람이라고 브라이언이 알려줬다

이름이 '칼' 이었던 같다




축구 유니폼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브라이언의 친구, 키이스(Keith)

내가 한국가면 유니폼 하나 보내주겠다던 약속이

이 사진을 보고 떠올랐다



말썽쟁이 아저씨들이 자꾸 내게 질척대자,

브라이언과 키이스의 여자친구가

나를 철벽 방어하고 있다

결국 저들은 나를 만지지 못했다



말썽쟁이 아저씨들과의 장난이 끝나고

다시 조용해진 '넵튠(The Neptune)'

왼쪽 깊숙한 곳은 아주 작은 무대인데

로컬 가수들의 공연이 열리곤 했다



내 친구 브라이언과 그의 친구 키이스

브라이언은 당시 은퇴한 국제변호사였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2년이 채 안되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걸 전해들었다



당시 영국의 담배는 우리나라보다 5배나 비싸서

한국에서 담배를 공수해서 피우는 게 더 쌌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 상태



브라이언과 이야기를 하고

키이스와 그의 여자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칼과 잠시 이야기를 했던 날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한편 바 한쪽 끝에 계시던 남자 분인데

이 분도 브라이언과 안면이 있던 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시길래 사진을 한 장 담았다



The Neptune, Hove, England



촬영 일자 : 200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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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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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1 11:34 신고

    펍 분위기가 생생하게 와닿는 사진들이에요.
    흔들린 것들도요!
    말썽쟁이 아재분들은 참...ㅋㅋㅋ
    얼근하게 취하신 게 사진으로도 보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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