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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여행 - 자그레브(Zagreb) 둘러보기 1편 / 201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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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나와 2번 트램을 탔다. 세 정거장을 지나니 다시 버스 터미널로 되돌아 왔고, 스텝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거기서 세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창 밖으로 보기에 큰 광장이 있고,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서 순간적으로 옐라치치 광장에 온 줄 착각했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기차역(Glavni Kolodror)이 있었다.


내가 내린 곳은 옐라치치 광장의 남쪽에 있는 토미슬라브 광장(Trg. Kralja Tomislavia)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행을 제대로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담으면서 반 옐라치치 광장으로 걸었다.



2번 트램을 타고서는 자그레브 기차역 앞에 내렸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오가는 트램도 매우 많았다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올 것도 같았는데, 다행히도 흐리기만 했다



기차역 맞은 편에 있는 토미슬라브(Trg. Kralja Tomislavia) 광장의 전경

왼편의 노란 건물은 아트 파빌리온(Umjetnički Paviljon)으로 일종의 갤러리이다

깔끔하게 단장한 노란 건물이 엄청 튀었다 



광장의 초입에는 토미슬라브 왕의 동상이 있었다

중세의 크로아티아의 왕이며, 나라의 기반을 거의 다져놓았다고 한다



토미슬라브 왕은 서기 910년에 '닌(NIN, 달마티아 반도의 지역. 자다르에서 북북서 약 20KM 가량 위치)'의 영주였던 인물이다. 자신의 힘으로 달마티아 반도를 통일했을 뿐만 아니라 마자르 족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도 성공하면서 새로운 국가의 기반을 다져나간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비잔틴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으며, 비잔틴 제국의 힘은 불가리아 제국의 반란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


반란을 일으킨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고, 이에 상당한 영토를 점령 당한 비잔틴 제국은 불가리아 제국에 연합하여 대항할 것을 로마 교회에 제안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비잔틴 제국이 관할하고 있는 달마티아의 해양도시(스플리트, 자다르, 트로기르 등)을 자신들에게 넘기면 도와주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불과 1년만에 세르비아의 라쉬카 공국이 패하면서 현재의 크로아티아 지역이 불가리아 제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서기 925년, 크로아티아는 이 혼란을 틈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토미슬라브 왕이 초대 왕에 오른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영향력에 들어 카톨릭으로 개종, 스스로가 서유럽의 경계가 된다. 그 때부터 희고 붉은 사각형 패턴의 토미슬라브 왕의 문장이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크로아티아의 국장이 되었다.



꽃과 동상과 기차역

별도의 정원사가 있는지 잘 가꿔져 있었다



별로 큰 기대는 안했는데, 토미슬라브 광장에서 옐라치치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제법 괜찮았다. 광장과 공원이 옐라치치 광장까지 계속 이어져 있었고, 이 쪽에 있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워서 충분한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특별하게 유명한 건물은 없지만, 한 때는 한껏 화려했을 건물들이 모여 유럽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내주었다.



광장의 양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걸었고



맞은편의 건물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유럽에 시간이 켜켜이 쌓인 것 같았다



사람이 앞에 타는 정체불명의 처음 보는 자전거

그런데, 초큼 많이 부럽구나



내가 갔을 때 아트 파빌리온은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건물을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사람을 들뜨게 하는 묘한 노란색의 건물



토미슬라브 광장을 지나면, '요십 유라이 스트로스마이어 공원(Park. Josip Juraj Strossmayera)'이 바로 이어져 있다. 이 작은 공원의 주인공은 스트로스마이어는 카톨릭 주교이자,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대학교수이기도 한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인데,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크로아티아가 자치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한 채로, 정계 은퇴를 하게 된다.


이와 별개로 이 사람은 좁게는 크로아티아, 넓게는 슬라브 인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정책을 펼쳤으며, 특히 학교, 화랑, 교회, 체육관 등등의 시설을 짓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요십 유라이 스트로스마이어 공원(Park. Josip Juraj Strossmayera)에 있는 그의 동상

여기는 작은 공터에 가까운 공원이라 그냥 지나갔다

크게 볼 것은 없지만 산책하며 지나가기에는 그만이다



그리고 '요십 유라이 스트로스마이어 공원(Park. Josip Juraj Strossmayera)'을 지나니, 바로 '즈리녜바츠 공원(Park. Zrinjevac)'이 있었다. 이 공원도 그냥 지나가기만 했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인상깊었다. 이 공원은 조금 전에 지나온 공원보다는 조금 더 컸고, 진짜 공원 같았다.



공원의 초입에는 이렇게 위인들의 흉상이 여러 개가 있었다

뭔가 중요한 일을 했거나 순직을 한 사람들이겠지

위인들도 너무 많아지면 머리 아파지니까 패스



잘 다듬어진 잔디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가 있었다

평온하기만 한 공원의 풍경



그리고 길의 양 옆으로 도열해있던 엄청난 크기의 플라타너스 나무

건장한 성인 남자 5명이 손을 맞잡고 둘러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컸다



이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니, 드디어 반 옐라치치 광장(Trg bana Jelačića)에 도착했다. 광장이라 해서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 정도의 크기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그래서 광장이라기보다는 공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활기가 넘쳤고,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이 말끔해서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숲 속 한가운데에 네모난 모양으로 있는 개활지에 있는 느낌이었다. 건물을 둘러보고 광장을 걸으며 내가 자그레브에 있다는 것을 만끽했다.




반 옐라치치 광장에 도착해, 사진으로만 봐왔던 자그레브 은행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반 옐라치치의 동상보다 저 건물이 더 반가웠다

저 건물을 보는 순간, 내가 자그레브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으니




광장의 서쪽과 북동쪽을 바라본 모습

반 옐라치치가 칼을 들고 가리키는 방향이 남쪽이다

동상 앞에는 일종의 장터 같은 게 있었는데

일단은 패스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반 옐라치치 동상의 모습을 담았다

이 동상이 원래는 헝가리를 겨냥해서 검의 끝이 북쪽을 가리켰었는데

형가리 정부의 항의 아닌 항의로 남쪽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갈 수 있는 곳은 많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몇 군데만 돌고 와야만 했다



한 꼬마 아이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자그레브도 비둘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적은 것 같았다

비둘기가 사람이랑 차 무서워하지 않는 건 전세계 공통인 듯



광장에서 11시 방향으로 나 있는 길(Radiceva ul.)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왼편에 나 있는 아주 조그만 샛길인

Zakmardijeve Stube를 따라 올라갔다

계단이 백 개 넘게 나온 것 같았지만, 끙끙대며 끝까지 올라갔다



계단을 다 올라서 바라본 자그레브의 풍경

솔직히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성당이 저 멀리 보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연인들끼리 자물쇠를 채우며 사랑을 약속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똑같나보다

미아(Mia)와 비토(Vito), 부디 행복하시길



크로아티아 현대 문학의 거장인 안툰 구스타브 마토스(Antun Gustav Matoš)의 동상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 저널리스트 등 상당히 화려한 이력의 그는

살아 생전에 이 곳을 좋아했다고 한다



동상 뒤에 있는 건물은 아마도 학교 같았다. 아래 사진을 찍을 때, 내 뒤 쪽 건물의 윗 층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연히 내가 아니겠거니 싶어서 무시하고 저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계속 부르길래 뒤돌아보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2층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한 번 고개를 갸웃해주고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니, 꺄르르 웃으며 황급히 사라졌다.



동상이 있는 곳 근처에서 내려다 본 풍경인데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오른쪽에는 세계에서 제일 짧은 케이블카가 있었다

그 이름은 우스피냐차(Uspinjača)라고 하고, 그 길이는 66M 밖에 되질 않는다



100년 조금 넘게 전에 언덕 위에는 상대적으로 부자들이 살았는데, 계단을 올라오는 게 힘들어서 이 케이블카를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는 66M 밖에 되지 않아, 세계에서 제일 짧은 케이블카이며, 탑승시간도 55초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케이블 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스피냐차는 지금도 운행을 하고 있지만, 내가 저 아래로 다시 내려갈 게 아니었기 때문에 케이블 카를 타진 않았다.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로트르슈차크 타워(Lotrščak Kula)

13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4층의 창문에서 매일 정오마다 대포를 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를 올라가볼까, 하다가 그냥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 관광객들이 와서 한 번 정신없이 흔들어줬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저 위로 올라가질 않더라. 이 앞에서는 옥수수를 파는 가판이 있었고 기념품을 파는 가판도 있었다. 그나저나 저 위에서 대포를 쏘면 누군가의 집으로 떨어질텐데, 그걸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살고 하니까 안하는 거겠지, 라는 생각.


투박한 건물을 뒤로하고 골목길(Dverce ul.)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