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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4 대만

진과스 황금 박물관 어딘가에 버려진 절의 흔적을 찾아.. - 진과스 황금 신사 / 2014.12.04

진과스에는 굉장히 자극적인 이름의 절이 있다. 그 이름하여 '황금 신사'. 황금 박물관은 사실 '박물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자극의 정도가 덜 한데, 이 '황금 신사' 라는 단어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에 있는 절처럼 느껴졌다. 또한 현재 폐허라는 게 나를 더 자극했다. 어떻게 보면 폐허라서 볼 게 없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공간은 어느 시점 이후로는 시간이 정말 소복히 쌓인 곳이다. 그래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진과스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곳 중 하나.


산 길을 걷다보면, 내가 '이 길로 가는 게 맞나?', 혹은 '이 길로 가면 정말 황금 신사가 나오나?' 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면, 일본식 기둥문인 도리이를 만나게 된다. 그런 도리이 두 개를 지나고, 조금 더 가다보면 황금신사에 이른다.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좋았다. 산 속에 둘러쌓인 채 진과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폐허가 마치 내 소유가 된 것만 같아서.



진과스 황금 박물관의 본산오갱(本山五坑)에서 광산 체험을 하고 나왔다

체험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이런 풍경이었다

공간이 극도로 좁았다가 극도로 트이니 그 대비가 강렬했다



본산오갱의 출구로 나오면 우측으로 이런 계단이 나 있었고

진과스 신사(金瓜石神社)라고 작게 표기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많이 가는 것 같지 않아서,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



저 산의 꼭대기는 차호산(茶壺山 / Teapot Mt.)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정말 주전자처럼 생겼고 높이는 약 580미터 정도

주변의 경치는 해발 1천미터로 느껴지는데

산세가 험해서 실제보다 높게 느껴지는 듯 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렇게 두 개의 석등이 나왔다

석등의 상태를 보니, 완전히 버려진 건 아닌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이 적을 뿐, 관리가 안되는 건 아닌 듯



그 석등 뒤에는

일본식 기둥 문인 도리이가 있었다

까치발을 올리고 봐도 진과스 신사는 안보이더라



이런 길을 걸어 제법 걸어올라갔다

체감 상 10분~15분 정도?

걷다보니 저 멀리 오른편으로 황금 신사가 보였다



마침내 오른쪽으로 꺾으라는 이정표를 만났고

꺾어서 조금만 가니까 이렇게

또 다른 석등과 도리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기둥만 남아버린 진과스 신사에 도착했다

이런 흔적을 볼 때마다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진과스는 한 때 아시아에서 가장 큰 황금광산 마을이었다

그 대비가 그런 공허함을 더 공명시키는 것 같았다



진과스 황금 신사에서 바라본 풍경

왼쪽 꼭대기에 차호산이 보인다

탁 트인 풍경, 아무도 없는 공간이 좋아서

한동안 조용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황금 신사는 진과스에 광산을 개발한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사원을 짓고 관리한 주체는 일본광업주식회사(日本鉱業株式会社)인데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회사이다



사원에서 내려다 본 진과스 시내

세계에서 가장 큰 관우상이 있다는 권제당(勸濟堂)이 보인다

눈에 띄는 큰 주황색 건물



진과스 황금 신사에서 내뎌라 본 도리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황금 신사로 오는 길이 참 예뻤다

일제강점기 중에는 1년에 한 번씩 큰 축제가 열렸다고도 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길



일본공업주식회사가 1933년 3월 2일에 준공한 이 황금사원은

진과스의 황금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다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대만에서 물러가면서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이렇게 기둥만 남아있다



산길이 위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는데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은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돌아나와 산을 내려왔다



이 황금 신사를 여행하고 난 다음, 이번 대만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진과스가 되었다. 내게는 타이페이도, 시펀도, 핑시도, 징통도, 싼샤도, 잉거도 이 진과스만큼 감흥을 주진 못했다. 진과스를 당일치기로 온 게 너무나도 아쉬웠으나, 하루라도 이렇게 와서 이 좋은 경험을 한 게 어디냐며 위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