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여행/'13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여행 - 코바치 국립묘지, 시로칵 게이트, 주타 타비야 / 2013.09.16

바쉬차르쉬야 광장 건너편에는 콘줌(Konzum)이 있었다. 케밥을 먹자 목이 타서 콜라를 하나 사서 마셨다. 평소에 탄산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이번 여행을 와서 적어도 하루에 한 병씩 마시면서 콜라의 팬이 되어 버렸다. 호스텔에서 준 사라예보 지도를 보며 어디를 갈까 하다가 도시의 동쪽에 요새가 있음을 보고는 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라예보는 한국을 출발하기 며칠 전에 갑자기 일정을 바꿔서 우겨 넣은 거라 여행정보가 많이 모자랐다.



바쉬차르쉬야 광장에서 길을 건너기 직전 뒤를 돌아 광장을 담았다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광장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정말 활기찼다

시골 읍내 장날의 느낌이랄까?



사실 저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호날두를 닮아서 급히 사진을 찍었더랬다

'Kasima Efendije Dobrace'라는 이름의 낡은 길이 함께 담겼는데

찍고 보니 빛이 참 예쁘게 담겼더랬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코바치 국립묘지(Memorial Kovaci)'

마주하고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는데

'몇 년 전에 현충원에 다녀오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팽개쳐 놓고, 여기와서 이들을 보며 먹먹해하면 뭔가 좀 이상하잖아



하얀 묘석이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름다웠지만, 묘식이 아름다운 건지, 이들의 희생이 아름다운 건지..

이 묘지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그리고 사라예보의 곳곳에서 이런 묘지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죽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 삶을 마쳤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묘지에 있는 사망연도가 비슷했다

1997년, 1996년, 1994년 등등..



끝없이 늘어서 있는 묘석들

공식적으로는 1,487개의 묘가 있으며, 대부분 샤히드와 군인이라고 한다

(샤히드/Shahid : 이슬람문화권에서 순교자, 명예롭게 목숨을 버린 사람)



국립묘지의 중앙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돔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사진에는 저 돔 안에 노병이 있었는데

그는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들은 사라예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지켜내고자 했던 자신들의 나라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그 수도인 사라예보를 영원히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세르비아인들이 공격했고, 보스니아인들이 죽었다. 그리고 코바치 국립묘지는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 1997년에 조성된 곳이다. 물론 사라예보 전역에는 이런 묘지가 산재해 있지만, 코바치 국립묘지가 가장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원 정도 되는 셈.


하지만 이 곳은 국립묘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15~16세기의 샤히드들이 묻혀 있었던 곳이고, 지금의 국립묘지는 기존에 있던 샤히드들의 묘를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나 코소보 같이 보스니아인이 아니었지만, 사라예보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도 이 곳에서 영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랐다

걷다보니 작은 문과 문의 양 옆으로 성벽이 보였는데 '시로칵(Sirokac)타워'였다

저 문을 지나면 엄밀히 말해서는 사라예보를 벗어나

'브라트닉(Vratnik)'으로 들어가게 된다



'브라트닉(Vratnik)'은 사라예보의 북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오래 전에는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여 동쪽에서 사라예보로 들어가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브라트닉(Vratnik)'이라는 지명도 '문/관문'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브라타(Vrata)'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브라트닉 요새(Vratnik Fort)'의 평면도

대략 이런 모양이고, 굵은 선으로 그려진 곳이 성벽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북쪽과 남쪽은 덧대어져 있는데, 이는 기존 성벽을 확장한 부분이다



'브라트닉(Vratnik)'은 사라예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방어 시설은 '비옐라 타비야(Bijela Tabija / White Bastion)'이었는데, 이 시설이 14세기에 지어지면서 사람들이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697년, '사보이의 유진 왕자(Prince Eugene of Savoy)'의 칩입을 막고자, '브라트닉(Vratnik)'에 거주하는 450개의 민가를 둘러치는 긴 성벽을 만들기로 한다. 그 후 약 40년 동안 4개의 요새(Bastian)와 3개의 게이트가 새로이 만들어졌는데, 윗 사진의 '시로칵 게이트(Sirokac Gate)'가 그 때 건설된 게이트 중 하나이다. 현재 성벽의 약 65%는 남아있고, 35%는 훼손되었다.



무슨 공연장 같기도 하고, 헬기장 같기도 했는데

원 주위로 둥글게 의자 같은 게 있는 거 봐서는 헬기장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그럴싸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관리는 전혀 안되던 곳



관광지가 아닌 진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순간

한 눈에 봐도 상당히 낡고 허름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는데, 좀 아쉬웠다



이건 우리나라 한옥의 대문과 비슷해보여서 담아봤다

저 대문만 보면 우리나라 삼청동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이미지



말끔하게 복원한 어떤 건물의 외벽은

너무 예뻐서, 어떤 예술 작품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앗! 고양이가 지나갔다

이미 해가 제법 기운 상태라 사진이 흔들렸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므로



그리고 마침내 '주타 타비야(Žuta Tabija / Yellow Bastion)'에 도착했다

그리고 성벽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헉! 하는 소리가 날 정도의 절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보니 사라예보는 산과 산사이에 있는 좁은 평지에 조성되었더라

사라예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왜 여기에 요새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맞은편 산자락에도 공동묘지가 보이고



집들은 산 비탈을 깎지 않고, 비탈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유럽의 지붕이 그렇듯 여느 그 붉은색의 지붕이었다

순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리도 아파와 성벽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았다

옆에서는 수다를 떠는 여자아이들이 있었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연인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까지 혼자 날아와

언덕에 올라 핏빛 과거를 가진 붉은 지붕의 사라예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냥 왠지 아련해졌다, 그런데 마음은 편했다



사라예보에는 세 개의 요새(Tabija/Bastion)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라예보가 아닌 브라트닉(Vratnik)에 있는 것이지만, 사라예보와 접하고 있으니 사라예보에 있다고 하자. 그러나 세 개의 요새가 모두 사라예보와 접하고 있는 건 아니다. '비옐라 타비야(Bijela Tabija/White Bastion)'과 '주타 타비야(Žuta Tabija/Yellow Bastion)', 이렇게 두 요새만 사라예보에 접하고 있고, 다른 한 요새는 브라트닉의 맞은 편에 있다.


나는 바쉬차르쉬야(Bascarsija)에서 길을 건너, 코바치(Kobaci)를 따라 올라갔다. 이어져 있는 시로칵(Sirokac)'을 따라 '시로칵 게이트(Sirokac Gate)'를 통과한 뒤 '브라트닉 메이단(Vratnik Mejdan)'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예코박(Jekovac)'길을 따라 급우회전을 했다. 그랬더니 나왔던 게 '주타 타비야'였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장소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풍경만으로도 이유없이 괜히 아련해졌다. 하염없이 앉아서 몇 십분을 보냈던 것 같다. 사라예보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밤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았다)


'비옐라 타비야'의 존재는 내가 사라예보에 있을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지도에는 '비옐라 타비야'라고 적혀있고, 나는 '비옐라 타비야'를 찾아야했으나, '주타 타비야'를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타 타비야에서 내려오면서 바라 본 코바치 국립묘지



그리고 일렬로 늘어서 있는 묘석



코바치 국립묘지와 접한 어느 집의 담벼락은

아직 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시내로 들어갈 지, 아니면 숙소로 들어가서 쉴지를 고민했다. 가지후스레브-베그 모스크(Gazi Husreb-Beg Mosque)과 모니카 한(Monica Han), 그리고 바쉬차르쉬야(Bascarsija) 광장을 지나 주타 타비야(Zuta Tabija)까지 둘러봤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천천히 둘러보는 내 습관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금 초조해졌다. 그래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시내를 더 둘러보기로 하고 '밀야츠카 강(Miljacka)'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