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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4 포르투갈

포르투갈 여행 - 리스본 : 전통음식 레스토랑 보타알타(Bota Alta) / 20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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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역에서 탄 기차는 약 한 시간 후 리스본 호시우 역에 도착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6시쯤 되었던 것 같다. 이 시간의 리스본은 뭔가를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하다. 왠만한 곳은 다 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뭔가를 먹거나 바깥을 돌아다니는 일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선은 피구에이라 광장으로 가서 벨렘으로 가기 위해 어디서 어떤 트램을 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결국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뭔가를 먹기로 했다. 하루 종일 같이 다녔는데, 그냥 헤어지면 매정하니까. 그러나 문제가 하나 생겼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는 것. 나는 원래 여행할 때 초코바를 먹거나 굶거나 조각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한다. 식당은 잘 안가는 편이라, 어디를 가야할지 혼란스러웠다. 한편, 유카는 유카대로, 혼자 여행 온 게 처음이라 이런 쪽으로 감이 전혀 없었다.


결국 트립어드바이저에서 1위를 한 레스토랑을 찾아 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정작 도착하니 그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식당 유리에 붙어있던 미쉐린 마크. 만약 열었더라도 가격이 비싸서 못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카가 어제 저녁을 레스토랑에서 먹었다고 하길래, 내가 그 쪽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 이동을 하긴 했는데, 왠지 썩 내켜하지 않는 것만 같은 눈치였다. 그래서 호시우 광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유카에게 가이드 북을 보자고 얘기했다. 유카는 일본어로 된 가이드북, 나는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딱 한 곳의 레스토랑이 두 권의 책에 공통적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레스토랑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그 레스토랑은 바이후 알투 깊숙한 곳에 있었다. 거의 상 로케 성당 근처까지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정작 찾으려니까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도를 켜고 GPS를 확인해서 찾았다. 인근에 술집과 클럽이 있고, 밤 치고는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약간 으슥했으나, 별 일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불은 켜져 있었으나 영업을 안하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으슥한 골목 분위기에 가게까지 그러니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출입문을 스윽 밀어보니 문은 열렸는데, 적갈색의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이왕 문을 열었으니, 그 커튼을 살짝 옆으로 일어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사람이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저 안쪽의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종업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 너무 일찍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50분. 저녁 식사를 하기에 이른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튼, 그 상황이 내게는 좀 미묘했다. 어딘가 으스스한 귀곡산장에 온 그런 느낌? 심지어 그들은 나오지도 않고, 그래도 앉아서 식사를 했다. 그래서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보고 영업을 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어떤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공기는 매우 무거웠다. 왠지 내가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차분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다.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데, 앉아서 잠시 기다려도 되고, 돌아서 나가도 좋다. 원하는 대로 하라." 약간 빈정상했지만, 더 헤메는 게 싫어서 그냥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그가 안내해주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다시 식사를 하러 돌아갔다.


적막.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솔직히 괜히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나갈까, 하는 생각도 했고.. 그냥 가까운데서 먹을껄 하는 후회도 들었다. 굉장히 뻘줌했다. 10분이 30분처럼 느껴졌다.


주소 : Travessa da Queimada 35-37, 1200-364 Lisboa, Portugal

전화번호 : +351 21 342 7959

영업시간 : 12:00~14:30 / 19:00~23:00



테이블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인테리어를 구경했다

우리에게 다가와 차분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던 남자가 저기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사장인 것 같았다



바에 있는 수많은 술병들

왼쪽에 있는 도자기는 하우스 와인이 담겨져 나오는 병이다

우리는 하우스 와인 작은 걸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뭘 먹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깔라우(Bacalhau)는 공부를 하고 왔기에, 그게 대구로 만든 생선 요리라는 것과 조리법이 수백가지가 된다는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 하나는 바깔라우로 정하고 다른 하나를 정해야 했는데..


잠시 있다보니, 누군가가 다가왔다. 서빙을 하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아까 나왔던 사장인 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주문을 받는데, 아까랑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아저씨가 엄청 친절했던 것. 그래서 "전통음식을 먹으려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바깔라우와 마리스코(Mariscos)를 추천해줬다. 둘 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식이라는 말과 함께 음식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바깔라우는 대구로 만든 생선 요리인데, 구이(Grilled)를 추천한다고 했고, 마리스코는 대구에다가 빵을 넣어서 죽처럼 만든 요리인데 맛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그의 추천에 따라 하우스 와인을 함께 시켰다. 참고로 포르투갈에서는 해산물에도 레드와인을 먹는다.



대구와 빵을 섞어 죽처럼 만든 요리인, 마리스코

조금 짜긴 했는데, 맛있었다

안먹었으면 후회했을 뻔한 그런 맛!

좀 짜면 함께 나오는 빵이랑 같이 먹어도 된다



대구로 만든 생선요리인 바깔라우

야채와 감자 아래에 큼지막한 대구가 숨어 있었다

이 음식도 매우 맛있어서 대만족이었다



음식이 나오고 유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뉴질랜드와 네덜란드의 헷갈렸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 덧 아까의 무거웠던 분위기는 가볍고 따스하게 바뀌어 있었다. 음식은 조금 짜긴 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조금 전에 했던 '그냥 나갈까?'라는 생각에 진짜로 나갔다면 후회할 뻔했다. 그리고 깜짝 놀랬던 게, 정신을 차려보니 식당 안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차 있었다. 아까의 귀곡산장과도 같은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여느 식당처럼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따스한 분위기. 그리고 향긋한 음식의 냄새도 가득했다. 가성비도 좋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서빙하는 분에게 팁을 주고 나올 정도로!


하우스 와인은 도수가 제법 셌다. 소주 정도는 되는 듯 싶었다. 식사를 마칠 때 쯤에는 알딸딸해져 있었다. 식사는 내가 사겠다고 했다. 언제인지도 모를 옛날에 읽었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의 내용이 내 뇌의 깊은 심연에서 갑자기 떠올라, 유카가 빚을 진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짧은 영어로 엄청 설득했다. 결국 내가 계산하고 유카가 산티니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걸로 합의.



'보타알타(Bota Alta)'의 간판

음식점이 너무 괜찮아서 한 장 담아두었다

그리고는 알딸딸한 기분으로 산티니로 갔다



산티니로 가는 길에 그 옛날 브라이언이 내게 알려줬던, 'One For The Road'와 'Night Cap'을 유카에게 알려줬다. 술기운에 문득 브라이언이 생각났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내게 너무나도 잘해줬던 영국인 친구.



리스본에서 두 번째 먹는 리조또, 산티니



술기운도 깰 겸 잠시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나는 밀크초콜릿과 헤이즐넛을 먹었고, 유카는 망고와 뭔가를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나니 정신을 좀 차리겠더라는



산티니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나는 내일 아침에 포르투(Porto)로 가야 했기에 이쯤에서 일어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게다가 짐도 싸야했고, 오늘 하루도 정리해야 했다. 내 숙소를 지나서 유카 숙소가 있었는데, 늦은 밤에 혼자 보내기가 조금 그래서, 유카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는 악수를 하고 '남은 여행 잘 하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고마웠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덕분에 좋은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