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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여행 - 두브로브니크의 로크룸 섬을 두 발로 걸어보다 / 201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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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룸 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서기 1천년 경에 베네딕트 수도회가 이곳에 굉장히 큰 규모의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규모는 섬에 있는 수도원치고는 매우 커서, 두브로브니크 인근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한 때는 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왕이 수도원에 선물을 바치기도 했고, 왕이 수도회의 의사결정을 따르기도 했을 정도라니 그 힘 또한 막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되고, 보수되었는데 아직도 섬에는 그 자취들이 많이 남아있다.


수도원이 설립된 이래, 약 800년 동안 수도사들은 이 섬에서 독립적으로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수도사들이 이 섬을 떠나 로마로 돌아가는 마지막 밤에 그들이 이 섬에 저주를 걸었다고 한다. '누구든 앞으로 이 섬을 취하는 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그리고 약 5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벨기에의 귀족인 '샤를로테(Charlotte)'가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결혼을 위한 혼수로 구입하게 되면서, 이 섬은 잠시 개인 소유가 된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한 '막시밀리언 퍼디난드 대공(Archduke Maximilian Ferdinand)'은 이 섬의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화려한 정원이 딸린 별장을 짓는다. 이후에 그는 멕시코로 건너가 멕시코의 황제가 되지만, 정치적으로 실패하면서 3년 만에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이 섬의 주인이었던 '샤를로테(Charlotte)'는 유럽으로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정신병을 얻어 평생 회복되지 못한 채, 약 60년을 홀로 거의 감금되다시피 살다가 죽는다.


샤를로테(Charlotte)가 정신병을 얻자, 이 섬은 그녀의 재산을 노린 친오빠(벨기에 귀족)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소유권이 넘겨진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이 섬은 또다시 혼수로 활용되는데, 나중에 유고슬라비아가 거금을 주고 사온다. 그 이후는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면서 현재의 크로아티아에 속해 현재에 이른다.



그냥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별 생각없이 걸었다

좁은 길의 양 옆으로 나무들이 빼곡했다



원래는 베네딕트 수도원이었던 16세기 건물이나

현재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레스토랑 이름은, Rajski VRT



수도원과 함께 있었을 성당의 흔적이 아니었을런지

두브로브니크와 마찬가지로 이 곳의 수도원도

1667년의 대지진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수도원이 문을 닫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Lokrum

옛날에 수도원이 있었던 자리인데

복원은 되지 않은 채 건물의 흔적만 그냥 남아 있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아마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보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우물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이 곳에은 회랑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건물의 일부는 복원되어 있기도 했는데

관광지가 아닌 실제 주거 목적인 듯 싶었다



성당과 같은 예배당의 지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외벽만 남았다

아마도 1667년의 지진으로 훼손된 게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해본다



폐허 속에서 자라던 풀



베네딕트 수도원이 물러난 이후에 이 섬의 주인인 된

막시밀리언 퍼디난드 대공은 수도원이 있던 이 자리에 별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 별장에는 이국의 식물로 가득한 정원도 함께 만들었다는데

그 정원이 지금 이 형태로 남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정원을 지나 바닷가로 갔다

바위가 엄청 많은 곳이었는데

물색깔이 아주 오묘했다



로크룸 섬

흔히 말하는 에메랄드 색과 사파이어 색이 섞인 느낌

이런 색의 바다는 처음 봤는데, 엄청 아름다웠다



로크룸 섬을 걷다보면 공작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이 섬의 주인이었던 막시밀리언 퍼디난드 대공이

1800년대에 별장을 지음과 동시에 데려온 공작새의 후손들이다



섬에는 오래된 나무도 많아서

삼림욕을 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숲 어딘가엔가 있었던 이름없는 매점

의자가 플라스틱 의자가 아니라

쿠션이 있는 쇼파인 게 이채로웠다



회색의 돌과 파란 바다가 만들어 낸 풍경

저 멀리 조그마하게 있던 사람들은 해수욕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바다도 정말 예뻤는데

그 위에 부서지는 햇살도 참 예뻤다



비루하지만 셀카도 한 번 담아보고



그 와중에 섬을 한바퀴 도는 유람선이 지나가길래

"어이~"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 쪽에서도 어떤 남자 두 명이 손을 흔들어주더라는



섬의 남서쪽에 있는 건물의 흔적이다

아마 초소 같은 것으로 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근방의 돌들은 자연석이 아니었고

건물을 해체하고 난 돌들 이었다



로크룸 섬의 유명한 명소 중 하나인 '죽은 바다(Dead Sea)'

파도로 인한 침식활동으로 형성되었는데

그 안에 바닷물이 고인 채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걷다보니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에 이르렀다

1950년대에 열대식물의 실험, 관찰을 위해 조성하여

약 800여 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곳



내부의 모습, 야자수가 보인다

식물을 잘 구별할 줄 모르는 나는 그냥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나왔다



또 어디론가 걷다보니



인공적으로 조성한 웅덩이가 나왔다

1800년 대에 막시밀리언 대공이 만든 것으로

여름에 별장에 물 공급을 위해 만든 빗물 저장소



그리고 포트 로얄을 향해 언덕을 올랐다

일부는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포장이 망가져 있었다



포트 로얄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고 돌이 매우 미끄러웠다



Port Royal

1806년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두브로브니크를 점령하고

세우기 시작한 요새, 포트 로얄(Port Royal)

로크룸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난 날, 전략적 요충지였기도 하지만

주변 풍경이 워낙 좋아서 한 번쯤은 가볼만 하다



포트 로얄의 입구로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보다 굉장히 훵했다

왼쪽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포트 로얄의 옥상에서 담은 풍경

두브로브니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포트 로얄의 옥상은 완전히 복원된 건 아니었다

일부 관리는 되는 상태이고, 앞으로 차차 복원되겠지만

나는 이렇게 복원 전에 왔다는 사실에 더 기뻐했다



두브로브니크 쪽을 바라본 풍경



또 비루한 셀카를 한 컷



포트 로얄의 부속 건물인 것 같은데

오랜 세월에 지붕이 내려 앉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언젠가는 복원되겠지



그리고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역소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라자렛(Lazalet)'을 지났다

전염병으로부터 섬을 지키려는 노력의 시작이 높은 벽으로 남았지만

시작만 굉장했을 뿐, 이 시설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문이 잠긴 담벼락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항구로 되돌아왔다

이 곳도 작지만 엄연하게 '포트록(Portoc)'이라는 이름이 있다

너무 작고 아담해서 예뻤던 곳



거친 산을 배경으로 요트가 한 대 떠 있는 멋진 모습

오른편의 마을이 '카트바트(Catvat)'라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 항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정표

로크룸 섬을 떠나면서 담은 사진



로크룸 섬은 녹지가 전혀 없었던 옛 두브로브니크에서 나무와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올리브 등과 같은 식물들을 심었다고 한다. 로크룸(Lokrum)이라는 이름도 '신 과일(Sour Fruit)' 이라는 뜻의 '아크루멘(Acrumen)'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해수욕 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섬을 한 바퀴 도는 트래킹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코스는 짜기에 따라 한 두시간 정도로 조절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물을 파는 곳이 없으므로, 물은 꼭 가져가는 게 좋다.


이제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