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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데이트로 살살 걸어보고 둘러본 수원화성 / 20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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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와 수원 화성을 다녀왔다. 원래는 화성행궁을 가보려 했는데, 주차장에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차가 많았다. 그래서 차를 돌려서 연무대 쪽으로 왔는데 이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 주차장에 들어오긴 했으나, 이미 만차라서 차를 댈 공간이 없었다. 겨우겨우 찾아 주차를 하긴 했지만, 다음에 이곳을 온다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가고자 했던 행궁은 못가고 성벽을 따라 걸었고 별도의 입장료 같은 건 없었다. 혼자 걸었다면 전투모드로 한바퀴를 돌았겠지만, 둘이서 같이 걸었기에 연무대에서 장안문을 찍고 다시 되돌아왔다. 날씨가 매우 변덕스러워서 해가 쨍하다가 구름뒤에 숨다가 했던 날.



수원화성 내부는 공원처럼 잘 다듬어져 있었다

저 앞에는 동북공심돈이 보였는데

나중에 우리는 저기까기 걸어가게 된다



테이크아웃을 한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버리려고 가지고 나왔는데

쓰레기통이 없어서 계속 들고 다녔다



이곳은 연무대라고 불리기도 하고

동장대 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햇살이 제법 뜨거운 날이었는데

서쪽으로 길을 잡아 장안문 쪽으로 걸었다

저 컵은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었음



우리나라 도시에 있는 유적지 중에서는

상당히 잘 보존되어있고, 개/보수도 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그냥 성벽을 따라 쭈욱 걸었는데

지도를 보고 확인해보니, 동북포루쯤 되는 것 같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이색적인 산책을



이날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러웠는데

마침 햇빛이 들어 이렇게 꾸러기처럼 사진도 담았다



저 앞에 정자 같은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그 뒤로 보이는 빌딩 숲이 그저 아쉽기만 했다



수원화성 안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정자, 방화수류정

보통 우리나라의 정자는 'ㅁ' 모양이 많은데

이 정자는 특이하게도 뒤집은 'ㄱ' 자 모양이다



현재 수원화성 주변은 모두 개발되어 주택과 상가

그리고 아파트 단지가 배경이 되어버렸지만

운이 좋게도 이 모든 게 없는 곳이 눈에 들어와

사진으로 담았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수원화성 중간중간에는 숨겨진 문인 암문'이

있었는데, HJ가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걷다보니 가뭄에 물이 거의 다 말라버린

수원천과 그 위의 화홍문을 볼 수 있었다

화홍문 앞의 해태(?)를 담는 HJ



이 날의 하늘은 마치 양털구름 같았다

참으로 변덕스럽기도 했고

근처에 카페가 있어, 잠시 들어가서 쉬었다

1시간인가, 1시간 반정도 쉬었던 듯



그리고 다시 나와서 장안문에 이르렀다

이 문은 참 멋지게 잘 만든 것 같다

방어적 기능도 있지만, 참 아름답기도 하다



HJ를 담았지만

왠지 다른사람 같이 나온 사진



그리고는 다시 연무대 쪽으로 설렁설렁 걸어 돌아왔다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좀 애매했다

이렇게 찍어볼까, 싶어 담아봤는데, 실패!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HJ를 한 컷 담았다



그리고 조금 자리를 옮겨서

창룡문을 배경으로 한 컷



구름 사이로 가려졌던 해가 다시 뜨길래

동북공심돈을 배경으로 한 컷 더 담고



동북공심돈 앞에서 성 내부를 배경으로

한 컷 더 담았다



그리고 재미삼아 점프샷을 몇 번 찍어봤는데

모두 실패! 하지만 표정이 좋아서 이 사진만



인스타그램의 유명 사진작가

오스만 무라드 따라하기



문득 걷다가 하늘이 멋져 보여서 담았다

맑다가 흐리다가 온갖 변덕을 다 보여주더니만

결국에는 멋진 모습으로 마무리



창룡문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원처럼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연을 날리기도 했는데

왠 여자애가 연을 굉장히 높이 날려서 잠시 구경했음



다시 연무대 쪽으로 돌아와

국궁 동호회 회원들이 활을 날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다음 주차장으로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쌓은 성이다. 당시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와 기타 새로운 장비들이 활용되어 성을 쌓는데 소요되는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한다. 한편 정조가 정치적으로 귀족들과 대립해서 적이 많았던 것은 사실. 만일의 경우에는 수원으로 도망쳐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기엔, 방어기능에 상당히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성 내에는 상업시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가 그러하듯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당시 축성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집대성한 '화성성역의궤'를 따라 원형 그대로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