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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월정사 그리고 월정사 전나무숲길 /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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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돌아다니지 않았더니, 답답하기도 해서 어딘가 다녀오고 싶었다. 며칠 전에 다녀온 곤지암 화담숲과 달리 조금 더 멀리 다녀오고 싶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어떤 블로그에 드라이크 코스가 소개되어 있길래, 그 시작인 월정사로 향했다. 해외에서 성당을 가는 것 만큼이나, 국내에서는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리, 오랜만에 절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전나무길 혹은 전나무숲길을 직접 걸어보고 싶기도 했고.


집에서 차를 가지고 나와 한참을 운전했다. 거의 다다르니 국립공원 매표소가 있었는데, 입장료와 주차비로 7천원인가, 8천원을 가져가서 살짝 놀랬다. 내가 이쪽에 너무 안와서 현실감이 무뎌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월정사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제법 있어서 한 번 놀랬고, 절이 산 깊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한 번 더 엄청나게 매우 깜짝 놀랬다.



월정사 주차장에서 월정사로 가기 위해서는

'금강교' 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 다리 아래로 있던 계곡이 멋있어서

태백산맥에 발을 딛고 있음이 생생해졌다



10월 초였지만 월정사 곳곳은

때이른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가을 느낌이 물씬



오대산 선재길이라는 트래킹 코스를 처음 봤고

날잡고 와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여행 이후의 난, 꿩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북한산 둘레길을 종종 걷고 있다



월정사 천왕문



내가 갔던 날 저녁에 이 곳에서

음악회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체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음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12세기 고려시대 석탑이자, 국보이기도 하다

그 앞에 탑을 마주보고 앉은 '육수관음상'은

귀한 건 줄 모르고 그냥 이 사진만 찍고 지나갔다

(바로 왼쪽에 음악회 무대 설치가 시작되어서)



월정사의 입구에서 계속 직진하여

다다른 절의 끄트머리

벽도 멋졌고, 한옥도 참 멋있었다



그리고 경내를 한 번 돌아보다가

스님이 거처하시는 곳을 지나게 되어

조용히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월정사를 빠져나와

주차장과 월정사 사이에 있는

전나무숲길로 걸어들어갔다



월정사 전나무 숲 길 초입에서 보는

금강교과 오대천에 비치는 그 반영



월정사 전나무숲길에는 길의 양 옆으로

곧게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심어져있었다

길을 흙으로 되어 있어서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일단 나무들이 크고 거대해서

진짜 숲에 온 기분이었고

평일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서 더 좋았다



진짜 숲이라 그런지 피톤치드 냄새가

많이 나서 제대로 산림욕 하는 기분이었다



내 앞을 다정하게 걷던

한 부부와 그들의 아이



아직은 푸릇함이 남아 있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 들어온 빛



천천히 걸으면서 나와 숲이 하나가 된다는

그런 명상(?) 같은 것을 하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때 이곳에서 가장 큰 나무였는데

쓰러지고 말라버린 기둥만 남았다

사람의 인생도 뭐 있겠는가, 싶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 내에 있던 성황당

뜬금없이 성황당이 있어서 의아했지만

그 자체가 그렇게 안좋은 것은 아니었다



시원하게 하늘 위로 쭉쭉 뻗은 전나무들

소나무와 전나무랑 비슷한데

전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구부러지지 않고

일자로 쭉쭉 잘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전나무숲길끝에 있던 일주문

한때는 이 길에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어

그 위로 차들이 다녔는데, 이를 복원한 것이라고



월정사는 '자장율사' 라는 스님이 서기 643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으나 1천 4백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되고 역사가 깊은 사찰인 것만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그 유구한 세월에 비해 절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졌다. 걸어서 5분 정도면 절의 입구에서 맞은편까지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찰 내에는 국보 48호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平昌 月精寺 八角 九層石塔)'이 있다. 11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려시대 석탑은 당시 평양인근에서 유행하던 다각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탑 중 하나이며, 해당양식으로 만들어진 탑 중에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석탑의 꼭대기 장식 부분은 훼손되어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석탑은 머리 꼭대기에 있는 장식도 완벽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음악회 무대 설치 때문에 주변이 굉장히 시끄럽고 산만해서, 더 자세히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울러 이 사찰은 여러번 불에 타서 전소하는데,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1377년과 1833년이라 한다. 그리고 최근에 6.25 사변 중 1.4 후퇴 때 작전상의 이유로 한미연합사령부에 의해 불태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복원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