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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

가을과 함께 찾아본 평창 오대산 상원사 /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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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를 둘러본 나는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차를 움직였다. 주차장에 장터 같은 것이 들어서 있었으나, 마땅히 내가 살만한 것은 없어서, 그냥 건성으로 둘러보고 지나쳤다. 월정사에서 상월사까지는 차로 약 10~15분. 주차비나 입장료는 월정사 입장 시에 낸 것에 포함되어 있어서 추가로 더 비용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다만, 길이 비포장에 가까운 도로라서 운전하기가 약간 불편했다. 그리고 1.5차선 정도 되는 좁은 길에 대형 관광버스도 많아서 식겁하기도 했다.


여튼, 월정사에서 상월사까지 숲이 우거진 비포장길을 운전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상원사 주차장에 차를 놓고, 상원사로 걸어 들어갔다. 이때가 오후 3시쯤 되었는데, 의외로 등산객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시간이었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이런 특이한 돌이 있었다

조선초 세조대왕이 목욕할 때

옷을 걸쳐놓은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세조는 이 곳 오대천에서 몸을 씻고

불치병이었던 종기가 다 나았다고 한다



상원사로 가는 길도 마치

트래킹을 하는 것처럼 신록이 푸르렀다

하지만 월정사 전나무숲길 보다는 감흥이 적었음



짙은 녹음 사이로 조금씩

붉은 색으로 물든 단풍



'상원사' 라고 쓰인 현판도

그리고 아래에서 내려다 보는 건물도

정말 멋졌던 청풍루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원사는 월정사보다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해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1~2주쯤 있으면 단풍이 참 멋지게 들 것 같았다



상원사 문수전은 모양이 약간 특이했다

불상이 모셔져 있는 곳에서는

스님이 불경을 읊으며, 기도를 하고 계셔서

방해될까봐 올라가진 않았다



상원사 문수전과 그 앞에

새로 조성된 듯한 석탑

상원사의 전경



그리고 역사 시간에 배웠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

'상원사 동종'이 여기 있었다

원본은 유리벽 안에, 복원품은 우측에



유리벽에 카메라를 아예 붙여서

담아본 상원사 동종 원본

서기 725년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현재 상원사 동종은 상단 일부에

약간의 금이 가 있어서

현재는 이걸로 타종한다고 한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절보다는 주변의 숲을 더 둘러봤다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문수전을 마주보고 왼편으로 있던

'만화루'를 지나 나오니 이런 길이 있었다

마침 빛이 예쁘게 스며들고 있어서 담았다



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담은 계곡

물소리가 졸졸졸 나는 게 참 좋았다



상원사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왔다

병안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6번 국도를 타고 진고개로 넘어갔다

그랬더니 내 앞에 나타난 '영진항'



차를 방파제 옆에 주차해놓고

잠시 내려서 이렇게 한 장 담고



바다도 한 장 담았다

그리고는 곧장 서울로 되돌아왔음



상원사는 월정사와 마찬가지로 신라시대에 두 왕자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해진다. 다만 고려시대에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는데, 고려시대 말에는 이 절이 폐허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377년 판서 최백청이라는 사람과 그의 부인 김씨가 시주한 자금을 바탕으로 절이 중창되었다. 이후 조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는 시기인데, 굉장히 특이하게도 태조 이성계부터, 관대걸이의 주인인 세조까지 임금이 친히 이 곳까지 오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되려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6.25 중 1.4 후퇴 때, 인민군에게 점령당해 전략적 기지로 활용될 것을 두려워한 한미연합사령부는 오대산에 있는 절을 태웠다. 월정사는 불에 타 없어졌는데, 상원사는 한암스님이 몸으로 막아서며 나와 같이 태우라며 저항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스님의 행동에 마음이 움직였던 군인들은 사찰을 태우는 대신에, 건물에 붙은 문짝을 한 곳에 모아 불을 지르고 돌아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