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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13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여행 - 물의 정령이 산다는 전설의 플리트비체(Plitvice) 2편 / 201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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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저지대(Lower Lake)에 있는 가장 높은 폭포인 '벨리키 슬랩(Veliki Slap)'을 마주 본 상태에서 뒤쪽을 자세히 보면, 'K코스'를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길 안내판이 있다. 계단인데, 매우 가파르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매우 미끄럽기도 하며, 난간도 없고 계단도 폭이 좁아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조심 한 걸음씩 옮기니 숨이 가빠왔다. 힘들었다.


그리고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계단이 끝났다. 건너편에서 보던 절벽의 위로 올라온 것만 같았는데, 호수는 안보이고 산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산길은 '플리트비체(Pltivice)'의 맨 마지막 호수이자 가장 큰 호수인 '프로스챤스코 예제로(Prošćansko Jezero)'에 거의 다 도달할 때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왔더니 주변 풍경이 조금 바뀌었다

인적이 없었고, 하얀 석회암이 드러나 있었으며, 숲이 울창했다

플리트비체에 온 게 아니라 마치 등산 온 것만 같았다




산길을 걷는 중간중간에 뷰 포인트가 있어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물 색깔,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던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부디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길  



걸었던 길은 트래킹 코스에 가까웠다

관광객의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어 혼자 걷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서서히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자연을 만끽하며 걸었다



자연이 웅장하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에 가서 밀포드 사운드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한낱 미물이라는 생각



걷다보니 P3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어마어마한 수의 관광객

식당이 있길래 뭔가를 먹을까 하다가 말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천둥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의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가득했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구름이 끼니 물 색깔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이쯤에서부터 슬슬 힘들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내 발걸음을 빨라지게 했다

여기서부터는 낙엽이 많아, 마치 선운사를 생각나게 했다

(선운사 앞의 도솔천은 도토리 나무의 타닌 성분 때문에 물이 검게 보이기 때문)



약간 신기했던 것은 덤불이나 관목 같은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무는 많았지만 우리나라처럼 빽빽하게 있진 않았고

이 때쯤 비가 한 두방울 내리기 시작해서 식겁했는데, 이내 그쳤다



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반결하고 손을 흔들길래 나도 손을 흔들어줬다

솔직히 저 배를 타고 싶었다




천둥소리는 여러 번 났지만, 다행히도 비는 잠깐 흩뿌리다가 금방 그쳤다

중간중간 힘들 때쯤 나타나서 내게 힘을 주던 너무나 아름다웠던 풍경들 



그리고는 오르막 길을 한참을 올랐다

언젠가부터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울창한 숲과 가파른 경사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과 비오듯 흐르던 땀 



게다가 이제 호수는 나무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중간에 있는 뷰 포인트에서 볼 수 있었을 뿐

그러나 그 풍경은 정말 예술이었다




플리트비체 지도를 보면, 첫번째 입구(Ulaz 1)이 있는 오른편은 저지대이고

두번째 입구(Ulaz 2)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고지대이다

여기는 위쪽 호수(Upper Lake)인데, 여긴 이름이 없는 호수다



Upper Lake의 거의 끄트머리에 왔을 때, 아까 하류 부근에서처럼 데크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아예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여 자연을 보호하고 있었다

사진은 나무뿌리의 갈라진 땅 속으로 물이 흘러 스며드는 모습, 신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긴 여정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수(Prošćansko Jezero)에 도착했다

그 느낌은 마치 대항해시대2에서 배를 타고 남극이나 북극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무나도 고요했고, 미동도 없는 풍경,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만 같은 공간적 이질감



오리 한 마리가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이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가장 마지막 호수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로스챤스코 예제로(Prošćansko Jezero)'

해발 637M, 68 헥타르, 깊이는 38M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라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하지만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물도 다 떨어져서 목이 마른 상태였다

'갈로바크(Galovac)' 호수에 있는 작은 폭포



플리트비체(Plitvice) 중간중간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다

이 곳은 물이 흐르는 석회암 지형이라, 호수는 물에 녹은 석회 성분이 많은데

이들이 오랜시간동안 나무에 고착화되면 호수는 신비한 색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아울러 나무가 겹치고 겹쳐서 댐 역할을 해 새로운 호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호수 중간중간에는 석회 성분이 고착화 된 물풀과

행운을 기원하며 던진 동전이 있었다

물풀은 조금 징그러웠는데, 동전은 데크를 내려가 줍고 싶었다



꼬불꼬불한 내리막 길을 걸어 내려갔다

쉬지 않고 몇 시간을 걸었더니 다리가 막 풀리려고 했었다



여전히 신비로운 물색깔

이 호수 안에도 나무가 쓰러져 있다

석회 성분이 한참 들러붙고 있겠지



'그라딘스코 예제로(Gradinsko Jezero)'에 있는 폭포

이 폭포는 떨어진 물이 마치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내 얼굴을 때렸던 것이 인상 깊었다

벨리키 슬랩(Veliki Slap)과 달리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여기는 스플리트(Split)의 요스코(Josko)라는 친구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준 사진이 이 폭포라는 걸 나는 단번에 알아맞췄다

만약 스플리트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한다면, 더운 날씨에는 이 곳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



아.. 진짜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물색깔

물을 떠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물을 뜨는 순간 그 색이 사라지기에

여기에 두고, 와서 보는 수 밖에 없다




날씨가 개었다

이 때의 나는 매우 지쳐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픈 생각 뿐이었는데

위의 광경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여태까지 본 반영은 다 어설픈 것이었구나, 싶었다

뚜렷한 반영은 언제나 합성이라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믿기로 했다




물에 빠진 나무와 물 속을 노니는 송어들

사진 보정을 조금 톡특한 느낌으로 해봤다

진짜 너무나도 신비로웠던 곳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사진 한 장을 담았다

중간 중간의 화려함과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평범한 호수와 언덕이 있을 뿐이었다



공원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 숙소는 호텔 벨류(Hotel Belleuve)라는 곳이었는데

두번째 입구(Ulaz 2)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너무 좋았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물을 마시고, 자그레브 버스터미널에서 사온 도넛을 하나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샤워를 하려다가 잠시 누워 있기로 했다. 잠이 막 들려는 순간, 저 멀리 창문 너머로 한국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귀가 쫑긋했으나, 한국어가 들리지는 않았다.


얼마 후, 잠이 든 상황에서 아득하게 한국어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게 꿈이 아니라 진짜 한국어임을 깨달았다. HJ가 JH, HK와 함께 왔나 싶었다. 나는 각성 상태였지만, 잠에서는 깨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제서야 일어나서 문을 열었고, 내 생각대로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플리트비체를 갔다가 방금 돌아오는 길이라 했다. 내가 방에 들어온 지 20분 정도 되었으니, 여차저차 하면 만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우리는 좁은 내 방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시간 후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보기로 했다. 


우리는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메뉴판에 술만 있고, 음식이 없었던 것. 그래서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술집이고, 식당은 밖으로 나가서 표지판을 따라가면, '폴라냐(Poljan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밖으로 걸어나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음식과 와인을 주문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먹는 식사다운 식사였다.



와인이 저렴해서 한 병 시켰는데

보통 와인보다 엄청 컸다, 네 명이었음에도 다 먹기 힘들었다는

Laguna 라는 이름을 보니, 아마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든 듯






그리고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

엄청 맛잇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던 곳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두번 보는 친구들인데 어쩌다보니 머나먼 크로아티아에서 만나게 되었다. 더 신기했던 건, 나는 혼자 배낭여행으로 왔고, 이 친구들은 따로 왔는데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 심지어 숙소가 똑같았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서로의 여정를 비교해보니, 비슷하긴 했지만, 조금 달랐다. 나는 자다르(1)-스플리트(1)-사라예보(2)-모스타르(1)-두브로브니크(2)으로 이어졌는데, 이 친구들은 스플리트(1)-흐바르(1)-두브로브니크(3)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이 친구들이 두브로브니크에서 떠나는 날 내가 들어가게 되는데, 일정을 조정해볼 수 있으면 조정해보기로 했다.


식사를 하며 가볍게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우리는 헤어졌다. 레스토랑에서 돌아오는 길이 깜깜했고 추웠다.


나는 내일 아침에 일찍 자다르(Zadar)로 가는 차를 타야 했고, 이들은 내일 오전에는 플리트비체를 한 번 더 둘러보고 오후에 스플리트(Split)로 가는 차를 탄다고 했다. 이제 헤어지면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시간이 맞아야 볼 수 있을 터.


샤워를 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숲 속이라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